조사일시 : 2006.06.01
전주 서문 밖 형장 숲정이 |
하느님의 종 이순이 루갈다, 유중성 마태오, 이태권 베드로,신태보 베드로, 정태봉 바오로, 김대권 베드로, 이일언 욥, 홍재영 프로타시오, 최조이 막달레나, 오종례 야고보 등이 참수되었고, 그밖에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신앙을 증거하며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전주 서문 밖 형장 숲정이.
전라감사 이목연이 사학 죄인 홍재영, 이조이, 최조이, 오종례 등을 참수에 처하고 아뢰었다 <일성록 헌종 기해 12월 10일>
이제 곧 어머니를 영영 떠나게 되고, 그래서 이제는 어머니께 딸의 도리를 다 할 기회도 가질 수 없게 되고 보니, 제가 어떻게 저의 모든 자연스러운 감정을 억누를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흘러가는 세월은 부싯돌에서 튀는 불똥처럼 길지 않음을 생각하면서, 당신의 자식인 제가 이 발걸음으로 천국의 문이요 영원한 행복의 문을 열러 가서 미리 그 문을 위한 영원한 기쁨의 대가를 치른다고 생각하면, 어떤 일이 있든 또 아무리 견디기 힘든 일이든 금새 평온해 지고 온통 감미로운 기쁨이 되고 맙니다. <이순이 루갈다가 어머니께 올린 서한, 다블뤼 주교의 "조선 주요 순교자 약전" 중에서>
천주교는 집안에서 전해 오던 신앙입니다. 유항검 등 삼촌들이 영광스럽게 죽었으므로 그들과 같이 죽기를 바랄 뿐입니다.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감사 앞에 끌려나가 문초와 형벌을 받으면서 신앙을 고백한 후 사형선고문에 서명을 한 유중성 마태오. 그는 1801년 1월 31일, 이순이 루갈다 등 친척들과 함께 숲정이라고 불리는 전주 형장으로 끌려나가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그의 나이 18세였다.
(1839년) 전라도 전주 감영에도 조정으로부터 같은 명이 내려져 우리의 다섯 증거자들은 고통의 끝을 보게 되었다. ... 장터(즉 전주 숲정이)에 모인 군중들 가운데서 칼은 다섯 명의 시간의 줄을 베었고, 그들의 영혼은 하느님과 하나가 되기 위해 떠났다. 때는 1839년 5월 29일, 음력 4월 17일이었다. 이성화(이태권) 베드로는 58세, 이(일언) 욥은 73세, 정태봉 바오로는 44세, 신태보 베드로는 약 70세였고, 김대권 베드로의 나이는 알 수 없다.<다블뤼 주교의 "조선 순교사 비망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