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일시 : 2008. 5. 22
최양업 신부님의 임종지(이견 있음): 성지 표지석(새재 주막에서 임종하였다는 구전에 의함) |
죽어가는 그의 입술에서 아직 새어 나오는 말이 다만 두 마디 있었으니 그것은 예수 마리아의 거룩한 이름이었습니다.<1861년 9월, 베르뇌 주교가 알브랑 교장 신부에게 보낸 서한 중에서>
최양업 신부님의 발병지: 문경읍 진안리 새재 주막 자리 |
토마스 신부는 공소 순방을 마치고 (베르뇌) 주교님한테로 가는 길이었는데, 도중에 티푸스에 걸려 며칠 만에 사망하였습니다. 매우 다행하게도 그는 (배론) 신학교에서 약 120리 떨어진 한 작은 교우촌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푸르티에 신부는 통지를 받고 그에게 마지막 사죄경을 염해 주고 종부성사를 주기에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 그는 예수 마리아의 이름을 중얼거리며 주 성모님에 대한 깊은 신심을 드러낼 만큼은 아직 의식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숨을 거둘 때까지 예수 마리아를 부르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1861년 7월, 페롱 신부가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보낸 서한 중에서>
저는 항상 건강하게 잘 지냅니다. 그러나 저 혼자 여행을 하기에는 너무 허약합니다. 하루에 고작 40리 밖에 못 걷습니다. 그래서 갈 길이 먼 공소 순회 때에는 항상 말을 타고 갑니다. 멀리 떨어진 지방들은 다 제가 순방합니다. 그래서 해마다 제가 다니는 거리는 7천리가 넘습니다.<최양업 신부님의 열여덟번째 서한 중에서: 185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