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 여우목 성지
여우목 교우촌 회장 이윤일 요한 성인
하느님의 종 김조이 수산나
문경 여우목 교우촌
여우목(호항리[狐項里])은 소백산맥이 높고 험준한 대미산을 경계로 충북 단양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문경 지방 최동북단에 위치해, 옛부터 경상도 동쪽 지방 사람들이 서울로 올라가려면 이곳을 거쳐 문경 새재로 넘어갔던 교통의 요충지였다. 1839년 기해박해 전후로 박해를 피해 이윤일 요한 성인(1815-1867)이 가족들과 이곳으로 이주하였고, 같은 시기 서치보 요셉 가족도 이곳으로 이주하면서 여우목 교우촌이 형성되었다.
병인박해가 일어나고 1866년 11월 21일 문경 포졸들이 이곳 여우목 교우촌에 들이닥쳤다. 당시 여우목 교우촌 회장 이윤일 요한은 마을 교우 30여명과 함께 문경 관아로 끌려가 사흘 동안 혹독한 형벌과 신문을 받았고, 배교를 거부한 교우들과 함께 다시 상주로 이송되었다.
당시 상주 관아에는 여우목 교우촌과 한실 교우촌에서 붙잡혀온 교우들이 함께 두 달 동안 옥고를 치르며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도록 혹독한 형벌을 받았다. 이윤일 요한 회장은 사학죄인의 우두머리로 기소되어, 감사(관찰사)에 있는 경상 감영이 있는 대구로 다시 이송되었고, 대구에 도착한 지 사흘 뒤인 1867년 1월 21일 관덕당 형장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한편, 상주 옥에서 신앙을 증거한 여우목과 한실 교우촌 교우들은 사형 선고를 받고 옥 안에서 교수형으로 순교하였는데, 대표적인 순교자가 현재 시복이 진행되고 있는 하느님의 종 김조이 수산나(1818-1867)이다. 김조이 수산나는 순교 복자 박경화 바오로의 손자 며느리로, 병인박해 당시 이윤일 요한 성인이 회장으로 있던 여우목 교우촌에 살고 있었다. 같은 날인 1866년 11월 21일 문경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1867년 1월 20일 상주 옥에서 교수형으로 순교하였다.

여우목 교우촌 안내문과 마을 벽 십자가
여우목 교우촌 (여우목 큰 마을)
여우목에 세워진 이윤일 요한 성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