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천 관아와 옥터, 하느님의 종 오반지 바오로 묘소 -
방탕한 생활로 가산을 탕진하고 신앙으로 거듭난 순교자
그의 아들이
다른 신자들과 함께 부친의 영광스런 유해를 수습하여
가족 무덤이 있는 진천 읍 인근의 선산에 매장하였다
- 하느님의 종 오반지 바오로 묘소(충북 진천읍 사석리 오소리 펀덜) -
* 진천 출신 오반지 바오로는 청주 남문 밖으로 끌려나가 군중들이 보는 앞에서 목을 조여 죽임을 당했다. 그의 시신은 아들과 신자 몇 명에 의해 지장골로 옮겨져 그 인근에 안장되었다.
그는 진천 반지 마을에서 비교적 풍료로운 생활을 하였다. 장성할 때까지 공부와는 담을 쌓았으며, 혼인한 뒤에는 방탕한 생활로 재산을 탕진하였다. 40세가 넘어 천주교 신앙을 접하면서 신자됨을 본분을 다하였고 그의 열심은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체포되어 진천 옥에 투옥되었다가 청주로 이송되어 그곳에서 신앙을 증언하고 죽임을 당했다. 옥중에서 그가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당부의 말이 적혀 있었다. "교우로서의 본분을 잘 지키고 남의 빚을 갚도록 하여라. 그리고 만일 체포되면 주님을 위해 순교하도록 하여라."
- 진천 관아터와 옥터에 세워진 진천 읍사무소와 진천 경찰서-
- <병인박해 순교자 증언론> 정리번호 36, 오반지 기록 일부 -
"반지 오 생원, 본디 진천 지장골 살더니, 병인년(1866년0 10월에 청주 포교에게 잡혀 청주로 와서, 남문 밖 읍청당에서 죽일 때, 관장이 말하기를 '배교하면 사리마', 하고 '다짐을 써 올리라'하고 백지 한 장을 내려보내니, 침을 그 백지에 탁 뱉으니, 곧 희광이가 달려들어 교(목을 졸라죽임)하여 치명하니, 백일청천에 곧 푸른 무지개 시체에서부터 하늘에 닿고, 모든 사람이 다 '이상하다'하더라. 때는 10월이러라. 치명할 때 똑똑히 그 모양을 본 이는 청주 송적 사는 류 베드로. "
- <병인박해 순교자 증언록>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