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성지

여산 순교 성지

여산 순교 성지

* 여산 순교 성지 관련 기사 (링크)

 

 

여산순교성지 (* 사진 제공: 호남교회사연구소)

 

여산 성지 성당  (* 사진 제공: 호남교회사연구소)

여산 순교 성지

여산은 병인박해 2년 후인 1868년 무진년에 많은 천주교인이 목숨을 바쳐 신앙을 증거한 순교 성지이다. 기록으로만 보아도 이곳에서 순교하신 분은 25명에 이르며, 전하는 바에 따르면 적어도 40여 명이 이곳에서 순교한 것으로 추정된다. 1983년 전주교구는 믿을만한 구전을 토대로 김성화 야고보 등 여산 순교자 열 분의 유해를 발굴하여 천호성지의 묘역에 안장하였다.


여산의 천주교 박해는 다른 어느 지역보다 끔찍하고 혹독하였다. 많은 신앙 선조가 여산 감옥과 숲정이, 장터, 기금터, 여산교(배다리)에서 일정한 형장이나 형벌이 없이 마구잡이로 죽임을 당하였다. 천주교인들은 매질이나 교수형, 백지사형 등의 참혹한 죽음으로 순교하였다. 그들은 옥에 갇혀 있는 동안 모진 고문과 실로 참기 힘든 굶주림을 견디며, 함께 기도하고 서로 격려하면서 신앙을 지켰다.

 

 여산 순교 성지  (* 사진 제공: 호남교회사연구소)

 

여산 순교 성지 - 숲정이성지(참수터), 백지사 터, 옥 터 

‘숲정이’는 ‘마을 가까이에 있는 숲’을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전주에도 숲정이 성지가 있지만 여산에도 숲정이 성지가 있다. 

전주 교구의 '제2성지'라 불리는 '여산 숲정이 성지'는 1868년 무진박해 당시 여산군의 속읍지였던 고산, 금산, 진산 등의 심산 유곡에 숨어 살다가 잡혀오면 행정상 여산 관할 지역이었기에 이곳에서 천주교 신자들이 모친 형벌과 고통을 당하고 순교한 곳이다. 비록 조그마한 고을이었지만 여산에는 사법권을 지닌 부사와 영장이 있었기 때문에 교우들을 붙잡아 오면 여산에서 처형되어 순교자가 되었다.

여산의 순교자들은 특히 다른 지역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없었던 가혹한 형벌인 백지사형(여산 동헌 앞마당)과 참수형(여산 숲정이)으로 순교하였다.  

 

여산 동헌 (*사진출처: 국가유산청 홈페이지)

 

여산 동헌 마당에는 흥선대원군 집권기에 세워진 척화비가 그대로 남아 있다. 맞은 편에 있 여산 옥 터는 현재 여산 초등학교 주차장이 자리하고 있다. 1868년 박해 당시 옥에 갇혀 있던 신자들이 굶주림에 못 이겨 옷 속에 있는 솜을 뽑아 먹다가 처형지로 끌려 나오자 풀까지 뜯어 먹었다는 일화가 전해 내려올 정도로 옥에 갇힌 신자 죄수들에게 가장 큰 고통은 무엇보다도 굶주림이었다.

 여산 숲정이 순교자들 가운데 10위의 시신은 신자들이 몰래 숨어 있다가 자루에 담아서 야음에 천호산으로 짊어지고 가서 안장하였다고 전한다. 지금 천호 성지서 성인 묘역에 자리한 무명 순교자 10위의 묘소가 이곳 여산에서 순교한 분들의 묘소이다.

 

여산 백지사터 성지  (* 사진 제공: 호남교회사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