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산 숲정이 성지
"그들은 얼굴에 여러 겹 붙여진 백지로 질식사를 당했다."
* 전주 교구의 '제2성지'라 불리는 여산 숲정이 성지는 1868년 무진박해 당시 여산군의 속읍지였던 고산, 금산, 진산 등의 심산 유곡에 숨어 살다가 잡혀오면 행정상 여산 관할 지역이었기에 이곳에서 천주교 신자들이 모친 형벌과 고통을 당하고 순교한 곳이다. 비록 조그마한 고을이었지만 여산에는 사법권을 지닌 부사와 영장이 있었기 때문에 교우들을 붙잡아 오면 여산에서 처형되어 순교자가 되었다.
<치명일기>에 기록된 순교자만도 22명(구전에 의하면 40~50명)에 이르는 여산은 특히 다른 지역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없었던 가혹한 백지사형터(여산동헌)와 여산 숲정이에서는 참수형과 교수형, 익사형으로 순교한 곳으로 유명하다.
백지사터 성지
* 배지 사형이란 교우들의 손을 뒤로 결박하고 상투를 풀어서 결박된 손에 묶어 얼굴을 하늘로 향하게 한 다음 얼굴에 물을 뿜고 그 위에 백지를 여러 겹 붙여 질식사 시키는 처형 방법이었다(일명 도모지 사형이라고도 함).
지금도 동헌 앞마당의 백지사 터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는 처형장에서는 얼굴에 달라 붙은 백지로 인해 숨을 헐떡이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천국 영복을 그리며 천주 신앙을 고백한 선조들의 가쁜 숨소리가 들려오는 듯 하다.
* 여산 동헌은 현재 전라북도 유형 문화재 제39호로 지정돼 있고 맞은 편 여산 초등학교 주차장으로 변해 버린 여산옥 터는 옥에 갇혀 있던 신자들이 굶주림에 못 이겨 옷 속에 있는 솜을 뽑아 먹다가 처형지로 끌려 나오자 풀까지 뜯어 먹었다는 일화가 전해 내려올 정도로 옥에 갇힌 신자 죄수들에게 가장 큰 고통은 무엇보다도 굶주림이었다.
* 여산 숲정이는 박해 당시 숲이 우거진 곳이었기에 숲정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이곳 여산 숲정이에서 치명한 이들 가운데 10명의 시신은 신자들이 몰래 숨어 있다가 자루에 담아서 야음에 천호산으로 짊어지고 와서 안장시켰다고 한다. 천호 성지에서 성인들 묘소 아래 무명 순교자들의 묘소를 볼 수 잇다. 그 순교자들 모두가 이곳 여산에서 순교한 분들이다.
* 여산 성당은 이들 순교자를 기념하여 그 정신을 따르기 위해서 1858년 10월에 여산 성당이 건립되어 1959년 1월 17일에 여산 본당으로 설정되었다.
<여산 숲정이 성지 순례 안내>
* 미사: 순례객 요청시
* 기타 사항: 식당 100명 가능/ 주차장 있음
* 자료 제공: 주교회의 국내이주사목위원회 성지순례사목소위원회
<한국의 성지, 순교자의 발자취>, 2009년 편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