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양 죽림굴 성지
(*언양성당 죽림굴 소개글)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은신처



(*사진 출처: 언양성당 홈페이지)
죽림굴(대재공소)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억새벌길 200-78에 위치한 죽림굴(대재공소)은 천연 석굴로 된 박해시대 공소로, 굴 주변에 산죽(山竹)이 많아서 불리워진 이름이다. 1839년 기해박해 이후 박해를 피해 충청도 일원과 영남 지역의 천주교 신자들은 좀 더 안전한 곳을 찾아다 이 천연 석굴을 발견하였고, 은신처로 삼았다. 이후 죽림굴은 단순한 은신처가 아니라 신앙 공동체의 주요 거점(공소)이 되었다. 이 대재 공소는 언양 지방의 첫 공소인 간월 공소에 이어 두 번째 공소가 되었다.

죽림굴 위치를 알 수 있는 언양 지역 공소와 성지 배치도(*출처: 언양성당 홈페이지)

죽림굴 입구 (*사진 출처: 언양성당 홈페이지)
죽림굴 위치는 간월산 정상 가까이에 위치한다. 폭 7m, 높이 1.2m 크기의 작은 동굴로, 대나무와 풀로 덮혀 있는 산 중에 난 작고 낮은 굴 입구는 쉽게 눈에 띄지 않아 신자들이 피신해 있기에 적합했다. 약 성인 1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으며, 근처 지방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큰 굴이다. 실제로 당시에도 포졸들이 재 넘어 간월골에 나타나면 교우들은 이곳에 숨어 지내면서 연기를 내지 않기 위해 곡식을 구유에 넣어 물에 불려 생식하면서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은신처
최양업 토마스 신부도 1860년 경신박해 때 3개월 동안 이곳에 은신하였고, 은사 신부들에게 보내는 마지막 서한(1860년 9월 3일 서한)을 이곳 또는 간월산중 교우촌에서 썼다고 알려져 있다.
" (...)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불쌍히 여기소서. 당신의 자비를 잊지마소서. 저희 눈이 모두 당신의 자비에 쏠려 있습니다.
저희의 모든 희망이 당신의 자비 안에 있습니다.
(...) 저희를 재난에서 구원하소서. 엄청난 환난이 저희에게 너무도 모질게 덮쳐 있습니다. (...)
주님께서 높은 데서 도와주지 않으시면, 저희는 대항하여 설 수가 없습니다.
(...) 이것이 저의 마지막 하직 인사가 될 듯합니다. 저는 어디를 가든지 계속 추적하는 포졸들의 포위망을 빠져나갈 수 있는 희망이 없습니다.
이 불쌍하고 가련한 우리 포교지를 여러 신분님들의 부단한 염려와 지칠 줄 모르는 애덕에 거듭 맡깁니다. (...)
지극히 겸손하고 순종하는 종, 조선 포교지 탁덕 최 토마스가 올립니다."
- 1860년 9월 3일 죽림에서 -


한편, 병인박해 때인 1868년 9월 14일 울산 병영 장대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한 복자 이양등 베드로, 김종륜 루카, 허인백 야고보 등 신자들은 이곳에서 가까운 죽령 교우촌(현 경남 울산시 상북면 이천리) 범굴에서 박해를 피해 생활하다가 체포되었다.
(* 일부 글과 사진 출처: 언양성당 홈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