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성지

남한산성 순교성지

 남한산성 순교 성지

(* 남한산성 순교성지 홈페이지)

 

복자 한덕운 토마스와 하느님의 종 9위가 신앙을 증거하고 순교한 곳

 

 

남한산성 동문(복자 한덕운 순교터)

남한산성(광주 유수부) 순교지

남한산성 한양의 군사 요충지로 1595년(선조28)에 성곽이 축조되었고 1626년(인조 4)에 광주 유수의 치소와 마을이 성안으로 이전되었다. 광주 유수부가 남한산성으로 이전되면서 박해 때마다 천주교 신자들이 이곳에 끌려와 투옥되고 혹독한 형벌을 받으며 순교하였다.

1791년 신해박해 때부터 신자들이 남한산성에 끌려와 투옥되었다는 전승이 내려오고 있고, 1801년 신유박해 때에 덕운 토마스 순교하였는데, 기록이 전하는 남한산성 최초의 순교자이다. 이후 1839년 기해박해와 1866년 병인박해에 이르기까지 약 300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참수, 교수, 장살, 백지사 등으로 순교하였는데, 안타깝게도 문초 기록이 남겨 있지 않아 순교자 행적은 극히 일부만 알려져 있다. 남한산성 순교자들 가운데 행적이 밝혀진 분들로 복자 한덕운 토마스, 하느님의 종 9위를 비롯한 김성우 안토니오 가족, 이천 단내 출신 정은 바오로와 정양묵 베드로 등 36명에 이른다.  (*일부 내용 출처: 수원교구 남한산성성지 소개글)

 

 

- 남한산성 순교 성지 순교자 현양비 -

 

 

한덕운 토마스 복자

한덕운 토마스

한덕운 토마스(1752-1802)는 홍주 출신으로 신앙 생활을 더욱 충실하게 하고자 고향을 떠나 경기도 광주 의일리(현 의왕시 학의동)로 이주하였다.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교회 소식과 교우들의 소식이 궁금하여 옹기 장사꾼으로 변장한 뒤 서울로 올라갔다. 청파동에서 거적으로 덮여 있는 홍낙민 루카의 시신을 보고 애통해 하며 그의 시신에 애도를 표하였고, 서소문 밖에서는 최필제 베드로의 시신을 찾아 장례를 치러 주기도 하였다. 한덕운 토마스도 결국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포도청으로 끌려가 여러 차례 혹독한 형벌을 받고 사형 판결을 받은 뒤 경기도 광주, 곧 광주 유수부가 있는 남한산성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순교 당시 그의 나이 50세였다.

 

남한산성에서 순교한 하느님의 종 9위

김덕심 아우구스티노(1798-1841, 옥사), 김윤심 베드로 알칸타라(1801-1868, 옥중 교수형 추정), 김성희 암브로시오(1815-1868, 옥중 교수형 추정): 김성우 성인 가족(아우들과 아들)

서태순 아우구스티노(1829-1866. 장사), 이조여 요셉(1843-1866, 장사): 장인과 사위로 병인박해 때 성 볼리외 신부와 함께 체포되어 순교함

정여삼 바오로(1822-1866, 옥사 추정)이 요한(1829-1866, 교수): 용인(삼베일 점촌)과 광주(먹방리)에서 신앙생활을 하였고 병인박해 때 순교함

정은 바오로(1804-1867,백지사), 정양묵 베드로(1820?-1867, 백지사): 이천 단내 출신 사촌 지간으로 병인박해 때 함께 체포되어 순교함

 

 

 

남한산성 포도청 터와 감옥 터(현 로터리 주창장 너머 천일관 옆)

 

 

남한산성 동암문(시구문) 표석, 순교자들의 시신은 시구문을 지나 바로 옆 계곡에 버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