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성지

손골 성지

 

 

손골 성지

 

 

 

 성 도리 헨리코 신부가 체포된 곳

박해시대 선교사 신부들이 언어와 풍습을 익히며 선교 준비를 하던 곳

 

 

"조선 만세! 내게 이렇게도 아름다운 전교 지방을 주신 것을 천주께 감사드립니다."

 

 

 

 

 

 

 

 

 

 

 

 

 

 

 

 

 

 

 

 

 

- 성 김(도리) 헨리코 신부님과 성 오(오매트르) 베드로 신부님 -

 

 

* 손골 성지는 광교산(582m)에 있던 교우촌이다. 박해시대 지방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신자들이 1839년의 기해박해 전후에 서울 가까이로 이동하여 교우촌을 이룬 것을 생각할 때 손골 교우촌도 이 시기에 형성된 것 같다.

 

* 손골 교우촌은 특별한 장소였다. 박해시대 프랑스 선교사들이 입국하면 안전한 곳에서 언어와 풍습을 익히며 선교 준비를 하는 시간을 가져야 했는데, 이 일을 위해 뽑힌 교우촌이 손골이었다. 그래서 박해 시기에 페롱, 조안노, 칼래, 오매트르, 도리 신부 등이 손골에 머물렀었다.

 

* 또한 신자 방문을 잠시 쉬는 여름철이 되면 선교사들이 손골을 찾아와 피정도 하고 지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베르뇌 주교와 랑드르, 프티니콜라, 위앵 신부 등이 손골에 왔었다.

 

* 손골은 순교지가 아니다. 그러나 손골에서 생활하던 신자 중에는 순교자들이 여럿 있다. 그 중에서 이 요한과 그 아들 이베드로 그리고 손자 이 프란치스코 삼대의 순교 이야기는 너무도 유명하다.

 

* 손골에서는 성 김(도리) 헨리코와 성 오(오매트르) 베드로 신부를 특별히 기념한다. 도리 신부는 한국에서 머문 시간의 거의 대부분을 손골에서 지냈고 손골에서 체포되어 순교하였다. 그리고 오매트르 신부는 손골을 포함한 지금의 수원교구 지역에서 사목하다가 체포되어 순교하였다.

 

 

- 도리 신부님 순교 기념비 축복(1966. 10. 24)

 

 

"1864년 6월 15일, 한국에 배정되었다는 말을 들었을때 도리 신부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 만세! 내게 이렇게도 아름다운 전교 지방을 주신 것을 천주께 감사드립니다." 이 전교 지방이 그에게는 두 배로 아름다웠다. 그곳이 하느님께서 그를 보내는 땅, 그의 꿈과 기도가 실현되기를 바라는, 곧 복음을 위해 피 흘리기를 원하는 땅이었고, 또한 그의 친구 브르트니에르 신부와 함께 있게 될 땅이었던 것이다. "

                                           "

* 1966년 도리 신부 순교 100주년을 맞아 고향 본당에서 도리 신부 부모가 쓰던 맷돌로 똑같이 생긴 돌 십자가 두 개를 만들어 하나는 도리 신부 생가 벽에 붙이고 다른 하나는 손골로 보내왔다. 그 십자가를 근거로 손골에 도리 신부를 기념하는 비가 세워졌다. 이것이 손골에서 도리 신부를 기념하게 된 계기였고 그후 발전하여 오늘에 이른 것이다.

 

* 손골에는 도리 신부 기념관과 '오매트르의 집'이 있다.

 

 

- 손골 성지 -

 

 

<손골 성지 순례 안내>

 

 

* 미사 시간: 주일과 금요일: 오후 2시

                   수, 목요일: 오전 11시

                   다른 요일은 전화로 협의 가능

 

* 고해 성사: 미사 전에 있음  

 

* 교통편: 대중교통 이용

 

- 지하철: 분당선 죽전역 하차 - 마을버스 17-1번 종점 하차

- 버스: 수지 머내 - 마을버스 17-1번 종점 하차                                             

 

 

 

* 자료 제공: 주교회의 국내이주사목위원회 성지순례사목소위원회

                     <한국의 성지 - 순교자의 발자취>, 2009년 편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