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성지

손골 성지

손골 성지

 

 성 도리 헨리코 신부가 체포된 곳

박해시대 선교사 신부들이 언어와 풍습을 익히며 선교 준비를 하던 곳

 

"조선 만세! 내게 이렇게도 아름다운 전교 지방을 주신 것을 천주께 감사드립니다."

 

(*사진 출처: 손골성지 홈페이지)

 

손골 성지

손골성지는 향기로운 풀과 난초가 무성하여 ‘향기로운 골짜기’ 손곡(蓀谷)에서 유래하였으며 프랑스 파리 외방 전교회 소속 선교사들의 전교 유적지로서 신앙의 전통이 계속 이어져 내려오는 유서 깊은 성지이다.  

수원시와 용인시에 펼쳐 앉은 광교산의 한 골짜기 손골성지는 천주교 박해시기에 박해를 피해 신자들만이 모여 살던 작은 교우촌이었다. 이곳에서는 프랑스 선교사로 병인박해(1866)때 순교한 도리(Dorie, 김 헨리꼬) 성인과 오매트르(Aumaitre, 오 베드로)성인을 기념한다. 아울러 박해시대 손골 교우촌에서 살았던 순교자들과 신앙 선조들의 정신을 기리고 있다.

손골에서 체포되어 새남터에서 순교한 도리 신부의 편지에 따르면 그가 손골에 체류할 당시 이곳에는 적어도 40~50명 정도의 천주교 신자들이 모여 살면서 신앙생활을 이어갔던 것 같다. 이들은 주로 담배 농사를 하며 근근이 생계를 꾸려갔다. 논이 조금 있기는 하였지만 홍수로 폐허가 되어 식량 구하기조차 어려운 생활을 하며 살면서도 박해시대에 선교사들이 안전하게 머물면서 새로운 언어와 풍습을 익히고 적응기간을 거치면서 주변지역의 사목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가며 신앙생활을 하였던 마을이다.

(* 출처: 수원교구 순골성지 소개글)

 

손골 교우촌

손골은 광교산(582m)에 있던 교우촌이다. 박해시대 지방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신자들이 1839년의 기해박해 전후에 서울 가까이로 이동하여 교우촌을 이룬 것을 생각할 때 손골 교우촌도 이 시기에 형성된 것 같다. 손골 교우촌은 특별한 장소였다. 박해시대 프랑스 선교사들이 입국하면 안전한 곳에서 언어와 풍습을 익히며 선교 준비를 하는 시간을 가져야 했는데, 이 일을 위해 뽑힌 교우촌이 손골이었다. 그래서 박해 시기에 페롱, 조안노, 칼래, 오매트르, 도리 신부 등이 손골에 머물렀다. 또한 신자 방문을 잠시 쉬는 여름철이 되면 선교사들이 손골을 찾아와 피정도 하고 지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베르뇌 주교와 랑드르, 프티니콜라, 위앵 신부 등이 손골에 왔다.

 

순례지가 된 손골

손골은 순교지가 아니다. 그러나 손골에서 생활하던 신자 가운데 순교자들이 여럿 있다. 그 중에서 이 요한과 그 아들 이베드로 그리고 손자 이 프란치스코 삼대의 순교 이야기는 너무도 유명하다. 손골에서는 성 김(도리) 헨리코와 성 오(오매트르) 베드로 신부를 특별히 기념한다. 도리 신부는 한국에서 머문 시간의 거의 대부분을 손골에서 지냈고 손골에서 체포되어 순교하였다. 그리고 오매트르 신부는 손골을 포함한 지금의 수원교구 지역에서 사목하다가 체포되어 순교하였다.

 

1864년 6월 15일, 한국에 배정되었다는 말을 들었을때 도리 신부는 이렇게 말했다. "조선 만세! 내게 이렇게도 아름다운 전교 지방을 주신 것을 천주께 감사드립니다." 이 전교 지방이 그에게는 두 배로 아름다웠다. 그곳이 하느님께서 그를 보내는 땅, 그의 꿈과 기도가 실현되기를 바라는, 곧 복음을 위해 피 흘리기를 원하는 땅이었고, 또한 그의 친구 브르트니에르 신부와 함께 있게 될 땅이었던 것이다. 

 1966년 도리 신부 순교 100주년을 맞아 고향 본당에서 도리 신부 부모가 쓰던 맷돌로 똑같이 생긴 돌 십자가 두 개를 만들어 하나는 도리 신부 생가 벽에 붙이고 다른 하나는 손골로 보내왔다. 그 십자가를 근거로 손골에 도리 신부를 기념하는 비(현양비)가 세워졌다. 이것이 손골에서 도리 신부를 기념하게 된 계기였고 그후 발전하여 오늘에 이른다.

 

- 도리 신부 현양비 축복(1966. 10. 24)

 

현양비 맨 위에 놓인 돌 십자가 (*사진 출처: 수원교구 홈페이지)

 

성 헨리코 도리 신부 동 (*사진 출처: 수원교구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