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산성지
(*수리산성지 홈페이지)
최경환 프란치스코 성인의 묘소 소재지
선조들의 신앙 터전
"주님의 천사가 황금으로 만든 자를 가지고 우리의 모든 발걸음을 재고 계십니다."


최경환 성인 묘소 (*사진 출처: 수리산성지 홈페이지)
수리산 교우촌
수리산은 박해시대의 천주교 신자들의 교우촌으로, 1838년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부친 최경환 프란치스코가 가족들을 데리고 이곳으로 이주하여 살았다. 당시 수리산 교우촌 신자들은 담배 재배로 생계를 유지하여 이곳을 '담배촌'이라고도 부른다. 이 마을을 유서깊은 교우촌으로 개척한 이가 바로 교우촌 회장 최경환 프란치스코이다. 최 프란치스코와 60여 명의 교우들이 함께 살았다고 전한다. 기해박해가 일어나고 1839년 7월 31일 최경환 프란치스코 가족들과 이 에메렌시아 등 40여 명의 교우들이 긴 행렬을 지어 한양 포도청으로 압송되어갔다. 그해 7월(음력) 이후 이 에메렌시아, 9월 12일 최경환 프란치스코, 이듬해 1월 31일 이성례 마리아가 순교하였다.

성 최경환 프란치스코(1804-1839)
최경환 프란치스코는 충청도 홍주 지방 다랫골[현재의 청양 다락골]에서 6남매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한국 교회의 창설 시대 때부터 천주교를 믿어 온 집안이었다. 어려서부터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였고, 성장해서는 신앙 생활에 도움이 되는 곳을 찾아 다니다가 가족들을 설득하여 서울로 이사하여 살았다. 그러나 외교인들의 탄압 때문에 서울을 떠나 강원도 금성(金城), 경기도 부천을 거쳐 과천(果川)의 수리산에 정착하여 교우촌을 건설하였다.
1836년 아들 최양업(崔良業)을 나(모방) 신부에게 보내어 마카오에서 신학 공부를 하게 했다. 1839년 초에 회장으로 임명되었고, 이어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순교자의 유해를 거두어 안장하고 교우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돌보던 중 7월 31일 서울에서 내려온 포졸들에게 체포되었다. 그와 함께 그의 아내 이성례 마리아와 어린 자식들, 하느님의 종 이 에메렌시아를 비롯한 동리 교우들 등 40여 명과 함께 체포되었다. 수리산에서 서울의 포청까지 끌려간 최경환은 2개월 동안 하루 걸러 형벌과 고문을 당하여 태장 340대, 곤장 110대를 맞았다. 9월 11일 최후로 곤장 25대를 맞고는 그 이튿날 옥사, 35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그의 시신은 그의 둘째 아들 최의정 야고보 등이 수습하여 노고산 근처에 가매장하였다가 수리산으로 이장하였다. 이후 1930년 5월 26일 명동성당을 거쳐 1967년에 절두산 성당으로 옮겨 안장되었다.
신앙의 모범을 보여준 부부
"첫째 아들 최양업을 비롯해 여섯 형제의 신심이 깊어질 수 있던 이유는 부모의 남다른 신앙교육에 있었다. 삶에서 늘 신앙을 실천했던 최경환에 대해 넷째 아들 최우정은 “항상 자신을 가볍게 여기고 남을 중하게 여기셨던 분”이라고 전했다.
또한 「기해일기」에는 성 최경환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는 낮이면 세상 일에 힘쓰고, 저녁이면 집안 사람과 여러 교우들을 모아 교리를 밝게 강론했으며 주일과 판공 첨례를 만나면 더욱 그 열심을 드러내 기도문을 읽거나 강론하고 서적을 보는 일을 기쁘고 성실히 했다.’ 최양업도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천성적으로 진정한 신앙의 실천자였고 정직과 순박을 애호하면서도 강력한 성품을 타고났다”며 “밭에서 일할 때나 집에서 일할 때나, 길에서 누구와 담화할 때나 항상 천주교 교리와 신심 사정에 대한 이야기만 했다”고 전했다.
최양업의 어머니 복자 이성례 마리아도 남편 못지않은 지혜와 신심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나이 어린 남편을 공경하면서 가정의 화목을 위해 노력했으며, 어린 자식들에게는 신앙의 교훈을 통해 인내심과 참을성을 키워 줬다. 끊임없는 피신 생활의 어려움 속에서도 자식들에게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와 요셉이 이집트로 피난 가시던 이야기와 골고타 언덕에 십자가를 지고 오르시는 예수님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궁핍한 생활에 대해서도 원망하지 않고 “이런 고통은 마지못해 받는 것이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신 가르침과 모범과 어진 성인들의 행실을 따르기 위해 스스로 구해 받는 것이다”라며 큰 영광으로 삼았다."
- 가톨릭신문 기사(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 (17) 최양업 신앙의 뿌리를 찾다 ) 일부 발췌 -

수리산성지 순례자성당 입구에 세워진 최경환 성인과 이성례 복자의 동상 (*사진 출처: 가톨릭신문)

(*사진 출처: 수리산성지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