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 개갑 장터
복자 최여겸 마티아의 순교지
"저는 유일한 참종교를 따르고 있습니다."

(* 사진 출처: 전주교구 홈페이지)


(* 사진 출처: 개갑장터순교성지 홈페이지)
개갑장터순교성지 (*소개글 출처: 전주교구 및 가톨릭순교현양원 홈페이지)
고창 개갑 장터 순교 성지는 순교 복자 최여겸 마티아(1763-1801)의 신앙과 희생을 기리는 성지이다. 최여겸 마티아는 전라도 무장현 공음치면에서 태어나 윤지충을 통해 천주교 신앙을 알게 되었고, 이존창의 지도를 받았다. 선교 활동에 헌신하여 공식적으로 28명에게 신앙을 전하고, 흥덕, 고창, 무장, 영광, 함평 등지에 복음을 전파했다. 1801년 8월 21일 형조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무장읍성 감옥에서 마지막 밤을 보낸 뒤, 최여겸 마티아는 8월 27일 개갑장터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했다.
복자 최여겸이 처형될 당시 무장현 동음치면의 개갑 장터는 '개개비 장터'라고도 불리웠고, 우시장으로 유명했다. 이곳 개갑장터는 무장 고을과 법성포를 연결하는 중간 지점에 위치해, 조선시대 당시 각종 산물의 집산지로 매우 번창했던 시장이었다. 안타깝게도 1910년 일제의 강제 병합이후 의병들의 물자 보급소와 연락처로 활용되면서 일제로부터 미움을 사고 폐쇄돼 지금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현재 개갑장터순교성지는 고창군 향토문화유산 제1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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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현 관아와 읍성(*사진 출처: 고창군청 홈페이지)

최여겸 마티아(1763-1801)
최여겸 마티아는 전라도 무장의 양반 집안에서 태어나 일찍이 윤지충 바오로에게 천주교 교리를 배웠다. 결혼한 뒤에는 이존창 루도비코 곤자가를 만나 다시 교리를 배우고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며 하느님을 위해 자신의 생애를 바치려는 갈망으로 가득했다.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충청도 한산의 처가로 피신하였으나 그곳에서 잡혀 관장 앞으로 끌려갔다. 주뢰질과 심한 형벌 등 너무도 잔인한 방식으로 그를 괴롭히던 몽둥이들이 부러져나갔으나 하느님에 대한 신앙은 변함이 없었다. 그는 한산에서 무장으로, 그리고 다시 전주로 이송되었다. 전주 옥에서 한정흠 스타니슬라오와 김천애 안드레아를 만나 문초와 형벌의 고통 속에서도 서로를 격려하며 순교의 원의를 다졌다. 이들 신앙의 형제들은 함께 한양으로 압송되어 포도청과 형조에서 문초를 받고 각각의 고향으로 보내 처형하도록 하라는 명령에 따라, 최여겸 마티아는 고향 무장(현재의 고창) 개갑 장터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이때가 1801년 8월 27일로, 당시 그의 나이 38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