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재
3대에 걸쳐 4명의 순교자를 배출한 남종삼 성인 유택
- 묘재 남종삼 요한 성인의 유택 -
* 묘재는 남종삼 요한 성인의 아버지 남상교 아우구스티노가 관직에서 물러나 신앙생활에 전념하기 위해 이사한 곳이며, 성인께서 살던 유택이 있다. 조선 후기 남인계 학자로 철종 때 승지에 올랐고, 고종 초에는 학덕을 인정받아 왕실에서 교육을 담당하였던 남종삼 성인. 그는 박해가 내려지기 이전에 대원군으로부터 설을 쇠기 위해 양부가 있는 묘재로 내려갈 것을 권유받고 낙향하였다가, 그 후 조정의 박해 소식에 놀라 변장하고 피신하다가 1866년 3월 1일 서울 근처의 고양 땅 잔버들이란 마을에서 체포되어 의금부로 압송되었다. 그는 모반 부도의 죄목으로 참수형을 선고 받고 1866년 3월 7일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홍봉주와 함께 순교하였다.
* 그가 순교한 뒤 남은 가족들도 모두 체포되었다. 대신들은 그 가족들을 뿔뿔이 흩어 유배 보낼 것을 주청했지만 고종은 이를 거부하고 처 이씨(이소사)와 두 딸, 막내아들을 창녕현 한곳에 같이 보내도록 조처하였다. 부친 남상교는 남종삼의 큰아들 남명희와 함께 공주 감영으로 이송되었다. 할아버지와 손자를 한 감옥에 가두지 않는다는 국법에 따라 14세였던 남명희는 전주로 이송되어 15세가 되던 해에 그곳의 초록바위에서 순교하였다.
창녕현으로 유배된 이소사 역시 그곳에서 순교했다. 3대에 걸친 4명의 순교자가 탄생한 것이다.
* 1894년 갑오경장으로 창녕현의 노비로 유배된 남종삼 성인의 세 자녀는 신원이 회복되어 종의 신분에서 풀려났다.
- 유택 뒷산 십자가의 길 입구-
* 1920년대부터 이 마을에 신자들이 들어와 살면서 교우촌을 이루었고, 1938년에 목조 건물의 공소를 신축하였다. 유택 앞에 있는 옛 공소 건물은 1955년 9월에 신축하였고, 현재 사용하고 있는 학산 공소는 1989년에 신축하였다. 1987년 순교자의 후손과 은인들의 도움으로 유택을 보수하였고, 뒷산에 14처를 조성하였다.
-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남종삼 성인 묘소 -
- 성인이 참수형을 받고 순교한 서소문 밖 순교 성지 -
- 남종삼 성인의 부친 남상교와 맏아들 남영희가 압송되었던 공주 충청 감영터 -
- 남종삼 성인의 큰 아들 남명희와 홍봉주 순교자의 아들이 함께 순교한 초록바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