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성지

황새바위 성지

황새바위 성지

복자 이국승 바오로가 참수된 공주 형장터

 

 

- 황새바위 성지 순교탑 -

 

 

황새바위

 

예로부터 황새들이 많이 서식하여 황새바위, 또는 목에 커다란 항쇄 칼을 쓴 죄수들이 이 언덕 바위 앞으로 끌려나와 죽었다고 해서  항쇄바위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황새바위에서 천주교 신자들을 공개 처형을 할 때에는 맞은 편 산 위에서 흰옷을 입은 사람들이 마치 병풍을 친 모양으로 둘러서서 구경을 하였다고 한다.  
황새바위는 한국 천주교 박해 역사의 시초부터 기록상 마지막 순교자를 낸 1879년까지 100여 년 동안 줄곧 피를 흘리며 신앙을 고백했던 순교자들의 숨결이 담긴 곳이다.

 

천주교 박해와 황새바위

 

* 공주에는 조선 건국 직후부터 관찰사가 관할하는 감영과 토포사(진영장)가 관할하는 진영이 설치되어 있었다.
천주교 박해가 시작되자 충청도 전역에서 많은 신자들이 체포되어 공주로 끌려왔으며, 숱한 신문과 고문과 함께 배교를 강요당하였고 많은 신자들이 순교하였다.
신자들은 옥에서 교수형이나 장사로 순교하거나 황새바위에서 참수형을 당하였는데,
1801년 신유박해 때 체포된 내포의 사도 이존창이 1801년 4월 9일 이곳에서 처음으로 참수형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 그리고 같은 해 7월경에는 이국승 바오가 이곳에서 참수형을 당하였다.

 

- 황새바위 성지 야외 경당 -

 

동정을 지키며 천주 신앙을 순교로 승화시킨 이국승 바오로

 

* 충주 지역에 전해진 천주교 신앙에 대해 듣게 된 이국승은 경기도 양근의 권일신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를 찾아가 교리를 배우고 즉시 믿음의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의 스승은 마음을 되돌려보려 애썼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러나 아직 신앙이 깊지 않아 1795년 을묘박해가 일어난 뒤 체포되어 형벌을 받던 도중에 석방되었고, 신유박해 때에도 배교를 반복한 적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마음 속에 강하게 닻을 내리고 있었던 신앙은 그를 순교의 길로 이끌었다.

 

- 순교자들의 명단이 새겨진 야외 경당 내부 벽 -

 

 

 

당신들은 나를 불쌍히 여기는 것 같은데 불쌍한 사람들은 당신들이오

 

* 그는 공주로 이송되어 형장으로 끌려갔다. 형장으로 가는 도중에는 구경꾼들이 모여 그를 따라왔다. 그는 그들에게 말했다.
"당신들은 나를 불쌍히 여기는 것 같은데 불쌍한 사람들은 당신들이오." 곧 그의 머리는 망나니의 칼 아래 떨어졌으니,
때는 음력 5월 26일 혹은 27일이었을 것이고, 베드로의 나이는 약 30세 정도였으며 그때까지 미혼이었다.
그의 시신은 조카들에 의해서 공주에 매장되었다. 

                                                                    

 - 성 다블뤼 주교의 <조선 순교사 비망기>, 이국승에 관한 기록 중에서 -

 

 

 

- 황새바위 언덕에서 내려다 본 제민천:  처형당한 시신들이 언덕 아래로 내던져졌다  -

 

* 처형된 순교자들의 머리는 백성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하여 나무 위에 오랫동안 매달아 놓았으며,
시신은 일반 죄수들과 섞인 채 지금보다 훨씬 넓은 황새바위 앞의 제민천에 버려져 금강을 순교자들의 붉은 피로 물들이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