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충청 감영터
손자선 토마스 성인, 복자 김원중 스테파노의 순교지

- 공주 충청 감영터 -

- 충청 감영 정문(포정사) 옛 그림과 변천 사진 -
- 충청 감영과 향옥이 그려진 1872년 공주목 지도(*소장처: 서울대규장각)
"나는 공덕이 없지만 주님의 도우심만을 믿고 천당에 오르기를 바라오."

김원중 스테파노(?-1866)
충청도 진천 발래기(현 충북 진천군 백곡면 명암리)에 살던 김원중 스테파노는 신앙심이 깊어 교우들 사이에 알려져 있었다.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 진천 관아에서 포졸들이 발래기에 왔을 때 스테파노를 비롯한 10명 교우들은 자진하여 체포되었다. 25일 동안 진천 관아에 갇혔던 김 스테파노는 공주로 압송되어 그곳의 옥에 갇혔다가 신앙을 증언하였고, 1866년 12월 16일 함께 갇힌 교우들과 함께 교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 충청 감영 터(현 공주사대부설고등학교 자)-

손자선 토마스 성인(1844-1866)

충청 감영(공주) 옥에서 교수형으로 순교한 손자선 토마스 성인은 충청도 홍주 거더리 출신으로 그의 집안은 3대째 내려오는 교우 집안이었다. 그가 덕산 관아에서 공주로 압송될 때에는 옥중에서 포졸들에게 어찌나 심하게 매를 맞았던지 떠매고 갈 수 밖에 없게 되었다. 그들은 매일 손자선의 옷을 벗기고 결박을 하고는 몽둥이로 치기도 하고, 어느 날에는 거꾸로 매달고 얼굴에 오물을 끼얹기도 하였다. 이 상스러운 모욕을 받으면서도 그는 그러한 고통을 달게 받아들였다. 배교시키려는 관장의 술책에 스스로 자신의 팔의 살점을 물어 뜯은 이야기는 너무도 잘 알려져 있다. 공주에 도착하여 세 차례나 심하게 고문을 당하면서도 항구하게 신앙을 지킨 그가 의식을 잃은 채 포졸들에 의해 옥으로 떠매어 내팽겨쳐지던 그 날, 1866년 3월 30일 여교우 2명과 함께 옥에서 교수형으로 순교하였다.
* 충청 감영 옥 터와 공주에서 순교한 하느님의 종들:
충청 감영 옥(향옥)은 하느님의 종 이존창 루도비코 곤자가가 신앙을 증거한 곳이면서, 하느님의 종 최천여 베드로, 최종여 라자로 형제, 고의진 요셉, 배문호 베드로, 김화숙 베드로, 고선양 등이 신앙을 증거하고 교수형으로 순교한 곳이다.
이 옥터 바로 맞은 편에 위치한 교동 성당에는 충청 감영 옥에서 순교한 하느님의 종들을 비롯한 많은 순교자들을 기리는 '순교현양비'가 세워져 있다.

교동 성당 순교자현양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