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성지

하느님의 종 김기량 펠릭스 베드로

 

 

 

 제주의 사도 김기량 펠릭스 베드로

 

 

 

어와 벗님들아 순교의 길로 나아가세

그러나 순교의 길로 나아가기는 어렵다네

 

 

 

- 하느님의 종 김기량 펠릭스 베드로 순교 현양비-

 

 

* 김기량 펠릭스 베드로는 제주섬 함덕리 출신으로 배를 타고 다니며 장사를 하던 사람이었다. 1857년 그는 동료들과 함께 장사를 나갔다가 풍랑을 만나 중국 광동성 해역에서 영국 배에 구조되어 홍콩에 있는 파리외방전교회에 인도되었다. 그곳에서 조선 신학생 이만돌 바울리노를 만나  그에게 교리를 배웠다. 그는  루세이유 신부에게 세례를 받고 귀국하여 제주도의 첫 번째 영세자가 되어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였다.

 

1866년 그는 여느 때처럼 무역을 하러 경상도 통영으로 갔다가 그곳에서 천주교 신자라는 사실이 밝혀져 체포되었고, 여러 차례의 문초와 형벌을 받으면서도 굳게 신앙을 지켰다. 그는 교수형을 받고 51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당시 통영 관장은 그의 가슴에 대못을 박아 다시는 살아나지 못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제주시 조천읍 함덕리에 있는 김기량 펠릭스 베드로의 생가터와 조천 포구-

 

 

"... 그는 우리와 작별하면서 자기가 제주도 고향으로 돌아가면 먼저 자기 가족에게 천주교를 가르쳐 입교시킨 후 저한테로 미구에 오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무슨 까닭인지 오늘까지 그에게서 아무런 소식도 없습니다. 혹시 그가 바다를 건너다가 또 파선이 되어 죽지는 않았는지? 그렇지 않으면 제주도에서 전교하다 관헌에게 잡혔거나 죽지나 않았는지 몹시 걱정이 됩니다.

조선말로 제주도라고 하는 섬은 옛날에는 독립되어 있다가 후에 조선에 합병되었는데, ...... 정부로부터 파견된 관원들이나 관청으로부터 허가를 받은 장사꾼들 외에는 누구에게도 제주도 상륙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또 제주도에서 육지로 나가는 것도 남자들은 관청으로부터 허가가 있어야 하고, 여인들에게는 엄금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섬에 교우가 있다 하더라도 현재로서는 사제가 들어갈 방도가 없습니다. 그러나 만일 하느님께서 저들에게 복음을 전해 받을 은혜를 주신다면 선교사 사제가 들어갈 수 있는 길도 열어 주실 것입니다...."

 

    -  <최양업 신부가 리브와 신부(홍콩 대표부의 대표)에게 보낸 1858년 10월 4일자 서한> 중에서-

 

 

 

  

"문초 내용: 무오년(철종 9년 1858년) 4월 초4일. 함덕리 출신 김성진(김기량) 43세.

사뢰오되, "너는 어느 해 어느 달 어느 날에 무슨 일로 바다에 나갔다가 다른 나라에 표류하여 해를 보내고 달을 넘겨 지금에서야 돌아왔는지 그동안의 사정을 숨김없이 바로 아뢰거라"라고 신문하였습니다.

이에 사뢰오되, "저는 약재를 싣고 무역자 격졸 문영환, 박식근, 문광철, 한앙문 등 4명과 함께 한 배를 타고, 지난 정사년(철종 8면 1857년) 1월 24일(양 2월 28일)에 정의현 서귀포롤 향해 가다가 갑자기 사나운 바람을 만났습니다. 이에 실었던 무명과 겉보리는 모두 잃어버렸고, 다만 양식 한두 말만 남아 있었으므로 끓여서 미음을 만들어 겨우 생명을 보존하였습니다. 그러나 여러 날이 지나 양식이 떨어지자 배 위에서 혼절하였습니다....배에 있은 지 5일째인 3월 초5일에 대청국 광동성 향항도(홍콩)에 도착하여 저를 청나라 사람의 배에 하선시켰습니다...."

 

 

 - 제주 섬에 귀환 후 문초 내용이 담긴 <제주계록> 함풍 8년(1858년) 4월 초7일의 기록 중에서-

 

 

 

 

- 황사평 성지에 세워진 하느님의 종의 순교비-

 

 

 

 

 

 

 

 

 

 

 

 

 

 

 

 

 

 

 

 

<순례 안내>

 

대중교통 이용: 제주국제공항(공항 버스 10번) - 삼양에서 환승 - 함덕에서 하차

 - 택시 이용(함덕중학교 서측에 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