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성지

부여 지석리

 

 

 부여 지석리

 

 

 

손선지 베드로 성인과 정문호 바르톨로메오 성인의 고향

 

 

 

- 부여 지석리 시성비 -

 

 

* 부여 지석리는 전주 숲정이에서 참수 치명한 성 손선지 베드로와 성 정문화 바르톨로메오의 고향이다. 이곳은 충청도 임천의 괴인돌이라는 마을이었다. 100년 박해사에서 가장 혹독했던 1866년  병인박해 당시 성인 한재권 요셉과 함께 전주 숲정이에서 참수 치명한 두 성인의 유해는 천호 성지에 묻혀 있다.

 

* 이들 두 성인은 팔이 부러지고 살이 터져 나가는 혹독한 고문 속에서도 평온을 잃지 않았고 형장에서도 오히려 축복의 순간을 맞는 기쁨에 용약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 두 성인은 1868년 10월 6일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 비오 6세에의해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2백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 반열에 올랐다.

 

* 이곳에는 아직도 손선지의 종씨들이 비신자로 살고 있는데, 가난한 생활 가운데서도 손선지 성인의 시성비라도 세워 달라고 홍산 본당에 밭을 기증했다고 한다.

 

 

- 손선지와 정문호 성인의 시성비 -

 

 

 

- 두 성인이 신앙을 증거하며 참수형으로 순교한 전주 숲정이 -

 

 

 "오늘 우리는 천국의 과거를 보는 걸세. 기쁜 날이 아닌가"

 

*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 정문호 바르톨로메오가 체포될 때 그는 65세였다. 그는 천주교 교리를 설명하는 재주가 뛰어났고, 또 예의 범절에도 밝았는데 교우들과  외교인을 막론하고 모두 이 점에서 그를 높이 평가했다. 1866년 12월 13일 죽음의 형장으로 가기 위해 옥에서 나올 때, 그는 열심히 기도문을 외고 있었다. 군사들은 그런 그를 조롱했다. "아니, 죽으러 가는데 그렇게도 좋으냐?" 그는 말했다. "오늘 우리는 천국의 과거를 보는 걸세. 기쁜 날이 아닌가."

 

 

" 곡식을 키로 까불어서 검불과 분리시키는 것처럼 천주께서도 박해 때에 그렇게 하시는데... 나 같은 사람을 천주께서 당신의 곳간에 받아 주실까? "

 

* 결혼해서 두 자녀를 둔 아버지로 47세의 나이에 신앙을 위해 순교한 손선지 베드로는  온순하고 경건하며 열심한데다 훌륭한 소질을 타고나 1839년에 순교한 샤스탕 신부는 그에게 회장의 직분을 맡겼다. 그는 이 직분에 맞갖은 삶을 순교에 이르기까지 살았다.  

 

 

- 전주 천호 성지의 두 분 성인의 묘소 -

 

 

 

 

 

 

< 부여 지석리 순례 안내 >

 

 

* 연락처: 홍산 성당 (041)835-0069

 

* 미사 시간:  홍산성당 -  주일 오전 9시, 10시 30분(미사는 본당에 문의하기 바람)

 

* 교통편:

1) 대중교통 이용: 대전 서부터미널에서 부여 방면 - 부여에서 홍산으로 - 홍산에서 충화 방면 하루 8회. 부여 지석리(팔충사앞 하차)

 

2) 자가용 이용: 서해안 고속도로 서천 IC - 부여 방면으로 우회전 - 홍산에서 충화 방면으로 우회전 팔충사 방향으로 직진 - 팔충사 앞 지석리 기념 비석

 

 

 

 

                                      

* 자료 제공: 주교회의 국내이주사목위원회 성지순례사목소위원회

<한국의 성지 - 순교자의 발자취>, 2009년 편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