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박해의 진원지 곡성
- 옥터 성지(곡성 성당 내)-
- 곡성 성당내 옥터 성지 표지석 -
천주교 박해와 곡성 성당
* 곡성 지역의 천주교 전래는 경상도와 강원도 지역의 신자들이 을해박해(1815)를 피해 곡성군 오곡면 미산리와 승법리로 피신해 옴으로써 비롯되었다. 이들 신자들은 생계 유지와 신분 은폐를 위해 옹기를 구우며 생활했는데, 1827년의 정해박해로 인해 다시 탄압을 받고 이곳 교우촌들은 폐허가 되었다.
* 당시 신자들 대부분이 배교하였으나, 장계 고을 이 바오로의 누이 이 막달레나와 이성지 세례자 요한 등은 끝까지 믿음을 지켜 순교하였다. 이후 곡성 지역의 복음 상황이 어떠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러던 중 1950년 무렵에 이르러 광주교구에서 이곳에 본당을 설립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교구장 대리 힐리(M.Healy, 허 미카엘) 신부가 지역의 실정을 파악하고 성당 건립을 추진하게 하였다. 이때 지역 신자수가 10여 명에 불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고장에 본당이 설립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오랫동안 제기되어 온 때문이었다. 그 결과 1958년 4월 착공과 함께 성당 설립을 보게 되었다.
- '정해박해 진원지' 임을 알리는 유리화와 곡성 성당 -
* 현재 곡성 성당이 자리하고 있는 곳은 조선시대 곡성현의 객사가 있던 곳이다. 1827년(순조 27) 이 지역에서 일어난 정해박해로 객사는 체포된 신자들을 가두고 끌어내다 문초와 형벌을 가하는 임시 감옥으로 탈바꿈하였다. 당시 전라도 지역에서 체포된 신자들은 약 240여 명으로, 관아에서는 이들을 모두 수감할 수 있는 감옥이 없어서 분산해 수용하였는데 심지어는 개인의 집에까지 가두기도 하였다.
* 광주대교구 곡성 성당은 신앙선조들이 피흘린 터전인 이곳에서 본당 설립 50주년을 맞이하면서 순교 선조들의 영성을 본받고 이를 널리 알리기 위해 본당 공동체가 한마음이 되어 노력하였다. 그 결과 정해박해 진원지인 덕실마을(승법리)과 옥터(현 곡성 성당)의 성역화, 성당 건물의 재건축, 당시 옥사를 복원하고 전시실을 마련하는 등 선조들의 피 흘린 터전을 조성하 수 있었고, 지속적으로 정성을 다하고 있다.
복원된 곡성 감옥터 이모 저모
- 혹독한 형벌과 굶주림의 고통 속에서도 항구하게 신앙을 지킨 순교자들의 숭고한 삶을 기리며 그들의 하느님께 대한 신앙 고백을 가슴 깊이 새기게 한다.
- 감옥 터 옆의 하늘에서 내려다 본
옹기 모습으로 조성된 하늘 못 -
옥터 전시실
정해박해 순교자들을 기리며 설립 50주년에 새로 단장된 곡성 성당 내부
- 수난의 예수 그리스도 -
- 본당 주보이신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유리화 -
- 성당 내부 벽면은 순교 성인들을 기리는 유리화로 장식되었다-
<옥터 성지 순례 안내>
* 미사 시간
- 월요일: 휴무
- 화, 금요일: 오후 7시 30분
- 수, 목요일: 오전 10시
- 토요일: 오후 3시(어린이 미사)
- 주일: 오전 6시, 10시 30분
* 고해성사(특별고해소 운영): 매일 미사 30분전
* 기타: 주차장 있음
* 교통편: 대중교통 이용
- 광주에서 곡성행 버스 이용하여 곡성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곡성 성당(곡성 군청 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