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성지

해미 순교 성지

 

 

해미 순교 성지

 

 

 

천주교 신자들의 생매장이 이루어지던 곳

 

 

- 해미 순교 성지-

 

 

* 해미의 천주교 역사는 내포 지역의 교회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내포 신앙 공동체는 한국 천주교회가 창설된 1784년 말에서 1785년 초 예산 여사울(현 충남 예산군 신암면 신종리)에 거주하던 이존창 루도비코 곤자가에 의해 설립되었다. 이어 여사울의 신앙이 서해안 지역으로 전파되고 곡교천, 무한천, 삽교천을 따라 내륙으로 전파되기 시작하였다. 1795년의 을묘박해 이전에 이존창이 천주 신앙을 전파한 지역을 볼 때도, 예산 여사울을 비롯하여 면천, 덕산, 공주, 한산, 보령, 천안, 홍주 등지로 나타난다. 아울러 내포의 신앙 공동체는 초기부터 주로 양인과 천민 등 주로 하층민 출신 신자들에 의해 정착되어 갔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해미 지역도 이와 같은 내포 공동체 권역 안에 들어 있었다.

 

1799년 30세의 나이로 홍주(지금의 홍성)에서 순교한 '하느님의 종' 박취득 라우렌시오의 순교 행적을 통해 한국 천주교회사에서 '해미'라는 이름이 등장하면서부터 1866년 병인박해에 이르기까지 해미는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죽임을 당한 순교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특히 한국 천주교회의 박해 1세기 동안 생매장형 순교지는 오직 홍주와 해미의 순교사에서만 나타난다.

 

 

 

 

 

해미 생매장터 발굴

 

* 해미 생매장터의 위치는 목격 증인들에 의해 구전으로 전해져 오고 있었다. 이에 1932년 서산의 '상홍리 본당'(현 서산 동문동 본당의 전신)에 부임한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 바로(P. Barraux, 한국명 범 베드로, 1903-1946) 신부가 이러한 구전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면서 해미 순교자들의 목격 증인들을 찾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증인들의 증언을 토대로 해미 읍성 서문 밖 순교자들의 순교 장면은 물론 조산리에서 있었던 교수형 및 생매장 과정을 생생하게 기록할 수 있게 되었고, 바로 신부는 증언을 토대로 현지 확인을 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해미 조산리의 옛 생매장(교수형 포함) 순교터는 그 본래의 자리가 확인되면서 유해와 진토가 발굴될 수 있었다. 이후 해미 성지가 조성되는 과정에서 1965년에는 서독 파견 광부와 간호사들도 한마음으로 성지 개발을 위한 봉헌에 동참하였다.

 

 

- 해미 성지 진둠벙 -

 

* 생매장형이 시행되면서 여름철 죄인의 수효가 적을 경우에는 사령들이 번거로움을 덜기 위한 방법으로 개울 한가운데에 있던 둠벙에 죄인들을 꽁꽁 묶어 물 속에 빠뜨려 죽이는 수장 방법이 사용되기도 했는데, 해미 지역 외인들은 천주학 죄수를 빠뜨려 죽인 둠벙이라 해서 '죄인 둠벙'이라 불렀다. 현재는 이름조차도 변해 '진둠벙'이라 부른다.

 

                                                                                         

 

 

 

  

                                              

 -  해미 서문 밖 순교지-

 

 

* 내포에서 끌려와 감옥에 갇혀 있던 많은 천주교 신자들을 군졸들은 매일 해미 진영 서문 밖으로 끌어내어 교수, 참수, 몰매질, 석형, 백지사형, 동사형 등으로 죽였다고 한다. 그러다 더욱 잔인한 방법이 고안되기도 했다. 돌다리 위에서 죄수의 팔다리를 잡고 들어서 메어치는 자리개질이 고안되어 죽이기도 하였고, 여러 명을 눕혀 놓고 돌기둥을 떨어뜨려 한꺼번에 죽이기도 하였는데, 혹시라도 꿈틀거리는 몸뚱이가 있으면 횃불로 눈알을 지져대기도 하였다고 한다.

 

 

- 2009년 서문 밖 순교지에서 해미 성지 경내로 옮겨진 자리개돌 -

 

 

* 참혹했던 1866년의  병인박해로 천주교 신자들은 해미 읍성 서문 밖으로 끌려나가 자리개질을 당하며 순교하였다. 당시 사형도구로 사용되었던 서문 밖에 있던 자리개돌은 1956년 6월 14일 동문 성당 구내로 이전 안치되었다. 그리고 1986년 8월 29일 본래 있던 읍성 서문 밖으로 다시 옮겨져 안치되었다가 해미 도시계획 도로가 개설됨에 따라 2009년 1월 8일 여숫골 생매장순교성지로 옮겨 보존하고 있다. 현재 서문 밖 순교지에는 자리개돌은 모조품으로 꾸며져 있다.

 

 

 

- 해미 순교 성지 순교자 기념관 -

 

 

* 순교자들이 죽음의 행렬 중에 바쳤던 '예수, 마리아' 기도 소리가 구경을 하던 외인들의 귀에는 '여수 머리'로 들렸기에 저들은 이곳을 '여숫골'이라고 불렀고, 지금도 그렇게 전해지고 있다.

 

 

 

 

 

 

 

 

 

<해미 성지 순례 안내>

 

* 미사 시간: 매일 오전 11시( 매주 토요일 오전 11시: 후원회원들을 위한 미사)

 

* 특별 신심 행사: 순교자들이 걸으셨던 1.5Km의 순교의 길을 따라 제등행렬 십자가의 길 기도

 - 연중 매월 둘째 주 금요일 저녁

 

* 기타 사항:

- 식당: 있음(접수 운영함)

-주차장: 있음

 

* 교통편: 대중교통 이용시

- 서울 남부터미널 서산행(10분 간격, 1시간 40분 소요)

- 대전 동부터미널 서산행(20분 간격, 2시간 30분 소요)

- 서산 공용버스터미널에서 해미행 시내/시외버스 이용, 10분-15분 간격 운행, 15-20분 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