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뫼 성지
한국 교회 최초의 사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탄생지
-솔뫼 성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동상 -
충청도 내포평야 한 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당진군 우강면 송산리 114번지. 산에 소나무 숲이 많다하여 솔뫼 또는 송산(松山)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한국 최초의 사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와 그의 부친 성 김제준 이냐시오, 당고모 성 김 데레사가 태어난 곳이며, 4대에 걸쳐 순교자를 배출한 신앙으로 다져진 곳이다.
- 2004년 복원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생가터 -
* 1814년 10여 년의 고통스러운 감옥생활 끝에 옥사한 하느님의 종 김진후 비오. 그는 솔뫼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살았다. 그는 1791년의 신해박해 때부터 1814년 12월 해미 옥에서 세상을 떠날때까지 여러 번 체포되었다가 풀려나곤 하였다. 1805년 체포되어 해미로 압송된 후 감옥에서의 10여 년 동안 신앙인으로서의 삶을 깊이있게 살았던 그가 옥중에서 숨을 거둘 때 그의 나이는 75세였다.
* 1816년 12월에는 대구 관덕정에서 김진후 비오의 셋째 아들이며, 김대건 신부의 작은 할아버지인 김종한 안드레아가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 김진후 비오가 1814년 해미에서 옥사하고, 1816년 김종한이 대구에서 참수 당하는 등 박해의 위협 속에 있던 김대건 신부의 집안은 1827년 정해박해를 계기로 솔뫼를 떠났다. 그들은 서울 청파로 이주하였다가 다시 경기도 용인 한덕동으로, 그리고 골배마실로 이주해 살았다. 어려서부터 집안의 신앙생활 속에 성장한 소년 김대건은 1836년 모방 신부에 의해 신학생으로 선발되었다. 1836년 12월 3일 김대건이 모방 신부 앞에서 한 신학생 선서에 그는 '솔뫼 출신'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김진후의 둘째 아들인 택현의 아들, 곧 김진후의 손자이며, 김대건 신부의 부친인 김제준 이냐시오가 서울 서소문밖 처형장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 1840년에는 하느님의 종 김종한 안드레아의 딸 김 데레사가 서울 포도청에서 교수형으로 순교하였다. 김 데레사의 남편 손연욱 요셉은 1824년 해미에서 옥사하였다.
* 1846년 9월 16일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솔뫼에 전해진 신앙은 1984년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성 김제준 이냐시오, 성 김 데레사 등 3명의 성인을 배출하였으며, 현재 김진후 비오와 김종한 안드레아는 시복 대상자인 '하느님의 종'으로 교황청 시성성에서 시복 심사 중에 있다.
"나는 하느님을 위해 죽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이 내게 시작되려고 합니다."
- 솔뫼 성지 성 김대건 신부 기념관 내부-
-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순교 100주년 기념비와 시성 기념비 -
솔뫼의 성역화 작업은 1946년 비로소 시작되었다. 당시 구합덕 본당 주임 페랭(P. Perrin, 白文弼) 신부는 송산리 산 45-1번지의 동산 4,866평을 매입한 뒤, 김대건 신부 순교 100주년 기념비를 건립함으로써 성역화 사업의 효시를 이루었고 이후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 오두막 성체조배실 -
- 솔뫼 성지 십사처 -
<솔뫼 성지 순례 안내>
* 미사 시간: 매일 오전 7시, 11시(월요일 포함)
* 고해 성사: 항상 가능
* 기타 사항:
1) 식당: 20인 이상 예약 가능/1식 5,000원
2) 주차장: 있음
* 교통편:
1) 대중교통 이용
-서울에서: 동서울터미널(하루 2회), 남부터미널(하루 6회)이용
-타지방에서: 합덕행 버스 이용
-합덕터미널에서 도보 20분, 택시 3분(1.5km)
2)자가용 이용
- 서해안 고속도로(서울, 인천, 전주, 광주)이용, 당진 TG에서 합덕, 예산 방향으로 나와 32번 국도타고 15-20분 정도에 '솔뫼 성지' 표지판 있음
- 부산, 대구, 대전에서 경부고속도로와 호남고속도로 사이에서 대전, 당진 고속도로를 타고 당진 방향-고덕 TG에서 합덕 방면(11Km)거리에 솔뫼 성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