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성지

대정 성지

 

       대정 성지

 

 

- 정난주 마리아 묘소-

 

 

정명련(命連, 마리아, 일명 蘭珠)

하느님의 종 정약종 아우구스티노와 다산 정약용의 맏형인 정약현의 장녀로 태어난 정난주는 신유박해 순교자요, <백서>사건으로 너무도 잘 알려진 황사영 알렉시오의 부인이다.

 

황사영의 순교 이후 가산은 적몰되고 숙부는 경흥으로, 모친은 거제도로, 부인 명련(난주 마리아)는 전라도 제주목 대정현의 노비로, 집안의 노비들은 갑산, 산수, 위원, 흥양 등지로 각각 유배되었고, 두 살짜리 아들 경한(景漢)은 어린 탓에 교수형을 면하고 전라도 영암군 추자도의 노비로 가게 되었다.

 

이때 명련이 유배를 가던 도중 추자도 예초리의 바닷가 바위 위에 남겨놓은 아들 경한은 오씨 집안 사람에게 발견되어 그 집에서 성장하였다고 한다.

 

이후 명련은 대정현 노비로 37년 동안 고생하며 신앙을 지키다가 1838년에 사망하여 대정읍 모슬봉 북쪽의 한굴왓에 묻혔으며, 경한은 사망 후 예초리에 안장되었다. 제주의 천주교 신자들은 정난주 마리아를 기리며 무덤이 있는 대정성지와 예초리의 아들 경한의 무덤을 조성해 놓았다.

 

생전에 그녀가 거처하던 대정의 김씨 집안에 의해 명련이 1839년 예초리의 경한에게 보낸 두 통의 서한이 전해지고 있다.

 

황사영 알렉시오

황사영은 서울 아현에서 유복자로 태어나 모친인 평창 이씨 윤혜(允惠)와 증조부 슬하에서 성장하였으며, 1790(정조 14)년 15세의 어린 나이로 진사시(시 부분 1등)에 합격하였다. 이때 정조가 그의 손을 잡아주기까지 하였으므로 이것을 표시하기 위해 손목을 명주로 감고 다녔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바로 이 해에 그는 정약현의 딸 명련과 혼인한 뒤 정씨 형제들과 가깝게 지내면서 천주교를 접하게 되었다. 1791년 이승훈 베드로에게서 천주교 서적을 얻어 보고 교리를 이해하게 되었으며, 정약종 아우구스티노, 홍낙민 루카 등과 함께 교리에 관해 더욱 깊이 연구하고 세례를 받았다.

 

황사영은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 천주교 신자들을 처형하자 충청도 배론으로 피난하여 은거하면서 북경의 구베아 주교에게 조선 천주교회의 어려운 상황을 보고하면서 구원을 요청하는 <백서>를 작성하였다. 그는 <백서>가 발송되기 직전에 능지처참의 판결로 처형되어 순교하였다.

 

 

 

 

 

<순례 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