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영은 경기도 이천(利川)에서 태어났으며, 신유박해 후 어머니와 과부가 된 누나 이소사 아가타(李召史)와 함께 입교하였다. 아버지가 대세를 받고 세상을 떠나자 서울로 이사하여 신앙 생활을 열심히 하던 중, 중국인 신부 유방제(劉方濟)에게 회장으로 임명되었다.
1835년 2월(음력 정월) 한강변 무쇠막에서 누나와 함께 체포되어 포청과 형조에서 매우 혹독한 고문을 당하였으나 한마디 비명도 지르지 않고 참아 내어 결국 형조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 때 결안(結案)의 犢聆僅价壞(邪學罪人)이라는 문구에 대하여, 천주교는 사학이 아니라 정도(正道)이며 거룩하고 참된 도(道)이기에 수결(手決:서명)할 수 없다고 버티자 포졸들이 강제로 수결시켰다. 그러나 사형 집행이 연기되어 4년 동안 옥에 갇혀 있으면서 누나 이소사 아가타와 함께 한날 한시에 순교하자고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다가 1838년 11월 25일(음력 10월 8일) 긴 옥살이에서 얻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36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