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랑조제프마리위스 앵베르(Laurent-Joseph-Marius Imbert), 한국 이름은 범세형(范世亨). 조선교구 제2대 교구장이며 주교로는 처음 한국 땅을 밟았다. 조선교구 초대 교구장인 소(브뤼기에르) 주교가 입국도 못한 채 병사하자 제2대 조선교구장으로 임명되어 1837년 5월 주교품을 받았으며 같은 해 말 조선 입국에 성공하였다. 그의 입국으로 조선교구는 그보다 앞서 입국한 나(모방), 정(샤스탕) 두 신부와 더불어 교구 설정 6년, 교회 설립 53년 만에 비로소 선교 체제를 갖추었으며, 1839년 초 신자수는 9천 명을 넘게 되었다. 그는 또한 한국인 성직자 양성에도 뜻을 두어 정하상 등 네 명의 열심한 신자들을 뽑아 사제로 키우고자 하였으나 때마침 불어닥친 박해로 뜻을 이루지는 못하였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났을 때 자신의 거처가 알려지게 되자 교우들에게 화가 미칠 것을 염려하여 스스로 포졸들에게 잡히는 몸이 되었다. 나, 정 두 신부에게도 인편으로 자수할 것을 권유하여 다같이 1839년 9월 21일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을 받았다. 이 때 그의 나이는 43세였으며 조선에 입국한 지 불과 2년 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