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성지

새남터 순교 성지

 

 

새남터 순교 성지

 

 

 

1801년 신유박해 순교자 중국인 주문모 야고보 신부의 군문효수에서 시작,

 1846년 병오박해의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를 포함하여

1866년 병인박해때까지 11명의 성직자가 순교하고, 3명의 지도급 평신도가 순교한 곳

 

 

 

- 새남터 순교 성지 성당 -

 

 

* '새남터'는 이 지역이 북쪽 한강변의 노들 나루터 인근에 위치한 얕은 모래 언덕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며, 조선 초기부터 군사들의 연무장과 국사범과 같은 중죄인의 처형장으로 이용되어 왔다.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가 시작되면서 서소문 밖 대신에 성직자들이나 지도층 신자들의 처형장으로 이용되었다.

 

 

- 새남터 성당 제대 -

 

 

- 새남터 성당에 모셔진 성 베르뇌 주교, 성 김대건 신부, 성 브르트니에르 신부의 유해 -

 

 

 

* 새남터가 천주교 신자들의 처형지로 이용되기 시작한 것은 1801년의 신유박해 때부터였다. 중국인 주문모 야고보 신부가 의금부에서 군문 효수형의 판결을 받고 이곳으로 옮겨져 5월 31일(음력 4월 19일) 처형당함으로써 이곳의 첫 순교자가 된 것이다. 당시 주문모 신부의 머리는 장대에 매달렸고, 그 시신은 닷새 동안 백사장에 버려졌다가 군사들에 의해 몰래 이장됨으로써 찾을 길이 없게 되었다. 이후 새남터는 성직자들을 비롯하여 교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신자들의 처형장이 되었다.

 

- 1839년의 기해박해 때는 제2대 조선교구장 앵베르 주교, 모방 신부와 샤스탕 신부가 9월 21일(음력 8월 14일)에 주문모 신부처럼 군문 효수형을 받아 순교하였고, 이어 1846년의 병오박해 때에는 한국인 최초의 성직자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9월 16일(음력 7월 26일)에, 현석문 가롤로가 9월 19일(음력 7월 29일)에 역시 군문 효수형으로 순교했다.

 

- 1866년의 병인박해 때에는 제4대 조선교구장 베르뇌 주교를 비롯하여 브르트니에르 신부, 볼리외 신부, 도리 신부, 프티니콜라 신부, 푸르티에 신부 등이 3월 7일(음력 1월 21일)에, 정의배 마르코와 우세영 알렉시오가 3월 11일에 군문 효수형으로 순교하였다.

 

 - 이 중에서 기해박해 순교자들의 시신은 신자들에 의해 노고산(현 마포구 노고산동)으로 옮겨졌다가 1843년에 삼성산(현 서울 관악구 신림동 57-1번지)으로 이장되었다.  그리고 김대건 신부의 시신은 와서(현 서울 용산구 한강로 3가의 왜고개 남쪽)에 일시 안장되었다가 안성 미리내로 이장된 반면에 현석문의 시신은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 병인박해의 순교자들 중에서 가족들에 의해 시신이 거두어진 정의배를 제외하고, 베르뇌 주교를 비롯하여 7명이 시신은 신자들에 의해 거두어져 와서에 안장되었다.

 

- 새남터에서는 모두 14명의 순교자가 탄생하였다. 이들 가운데 11명이 시성되었고, 중국인 주문모 야고보 신부는 2014년 8월 16일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방문으로 서울 광화문에서 이루어진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식에서 복자 반열에 올랐다.

 

 

새남터 최초의 순교자 복자 주문모 야고보 신부

 

 

* "4월 28일(음력 3월 13일), 시내 통행을 허가하는 종이 울리고 난 뒤 조금 후에 신부는 이 집의 어느 교우 옷을 청해 입었다. 그에게 어디에 가느냐고 묻자, 알 필요가 없다고 대답하며 굳이 혼자 나갔다. 한 교우는 신부가 무엇을 하러 가는지 알아보려고 멀리서 따라갔는데, 그것을 안 신부는 부채로 돌아가라는 신호를 했다. 그 교우는 계속 신부를 따라 갔으나, 좀더 멀리 가자 곧 통행하는 사람들의 무리 속에서 신부를 시야에서 놓치고 집으로 돌아 왔다.

주 신부는 의금부 옥 앞으로 갔다. 포졸들이 누구냐고 묻자 그는 대답했다. '나 또한 천주교를 실천하오. 내가 듣건대 조정에서 엄격하게 천주교를 금하고 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죽인다고 하니, 내가 산다한들 이제 쓸데없는 목숨이 되었으므로 죽음을 청하러 왔소. 당신네들이 사방으로 헛되이 찾고 있는 (주)문모가 바로 나요. "

 

 - 성 다블뤼 주교의  <조선 순교사 비망기> 에서 -

 

 

 

 

새남터에서 순교한 한국 교회 첫 번째 사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 "벗들이여! 태초에 만물을 마련하신 천주께서는 사람을 당신 모습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이렇게 하실 때에 그분의 목적과 의향이 어떠한 것이었는지를 보십시오. 만일 이 험하고 비참한 세상에서 우리가 우리의 가장 높으신 주님과 창조주를 알지 못하면 우리가 태어난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우리의 생명은 무익한 것이 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은혜로 세상에 왔고 또 하느님의 더 큰 은혜로 성세를 받은 덕으로 그분 교회의 신자가 되어 우리는 참으로 귀중한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열매를 맺지 못하면 이 이름이 우리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

 

 - 성 김대건 신부의 <옥중 서한> 중에서 -

 

 

 

 

- 지하 새남터 기념관에 있는 새남터에서 순교한 성직자들의 흉상과 부조 -

 

 

* 새남터 성당에서는 1996년 7월 새남터에서 순교한 성인들의 유해를 안치한 성해 참배실을 마련하여 순교자 신심 활성화에 노력해 오고 있다.

 

 

- 새남터 성당 성모상 -

 

 

 

<새남터 순교 성지 순례 안내>

 

 

* 미사 시간: 

 

- 매일 오전 6시, 오후3시(순례자를 위한 미사)

- 토요 특전미사: 오후 6시

- 주일미사: 오전 6시, 9시(어린이 미사), 10시 30분, 오후 6시

                

* 고해 성사: 매 미사 시작 전

 

* 기타 사항: 식당 있음(200명 수용 가능)

                    주차장 있음

 

* 교통편: 대중교통 이용

 

- 버스: 1)지선버스 0015번을 타고 대림아파트 입구에서 하차

           2) 각 방면에서 용산행 버스를 타고 데이콤 앞에서 하차 도보로 10분

               (한강대교 앞에서 우회전)

- 지하철: 1호선 용산역, 4호선 신용산역에서 도보로 15분 거리(마을버스 0017번 이용 가능)

- 마을버스: 용산역 앞 용사의 집에서 산천동행 마을버스(0017번), 대림아파트 입구에서 하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