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명문 양반가에서 태어난 홍병주는 1801년 신유박해로 할아버지 홍낙민(洪樂敏)이 순교하자 아버지를 따라 충청도 서산으로 이사하여 그 곳에서 자랐다. 조상부터 지켜 온 신앙을 물려받아 독실한 신앙 생활을 하였으며, 동생 홍영주(洪永周)와 함께 충청도 내포 지방의 회장이 되었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9월말 동생과 함께 체포되어 포청에서 몇 차례의 고문을 당한 뒤 형조로 이송되었는데, 친척인 형조판서는 인정상 직접 신문하지 않고 하관(下官)에게 모든 수단을 다 써서 홍병주, 영주 형제를 배교시키라고 명령하였다. 이에 홍병주는 가장 지독한 형벌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끝까지 버티어 냈고 결국 1840년 1월 31일 5명의 교우와 함께 당고개에서 참수형을 받아 42세의 나이로 동생보다 하루 먼저 순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