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 양반의 후예로 서울에서 태어난 홍영주는 충청도 내포(內浦) 지방의 여사울에서 자랐다. 대대로 이어온 신앙을 이어받아 독실한 신앙 생활을 하였고, 형 홍병주(洪秉周)와 함께 충청도 내포 지방의 회장으로 교회 일에 헌신하였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고 서양 신부들이 체포된 뒤 9월 말에 이르러 홍영주는 형과 함께 서양 신부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한 죄로 체포되었다. 1840년 2월 1일, 하루 먼저 순교한 형의 뒤를 따라 2명의 교우와 함께 당고개에서 39세의 나이로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