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업이는 어려서부터 독실한 신앙 생활을 하며 동정을 지키고자 하였다. 그러나 어머니의 권유로 혼기에 이르러 교우 청년과 결혼하였다. 중년이 되어 남편과 자식을 모두 잃고는 친정으로 돌아와 노모와 함께 애고개(지금의 아현동)에서 망건을 만들어 팔며 살았다. 노모에게 순종하는 좋은 표양과 해박한 교리 지식으로 외교인들에게 전교하며, 순교할 결심으로 살아가던 김업이는 1836년 10월 김아기(金阿只), 한아기(韓阿只) 등과 함께 체포되었다. 포청과 형조에서 천주교 서적을 숨긴 죄로 매우 혹독한 형벌과 고문을 받았으나 모두 참아 내고 형조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형집행이 유예되어 3년을 옥살이한 끝에 1839년 5월 24일 8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자신의 소원대로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그 때 나이는 66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