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성지

서소문 밖 순교 성지

 

 

서소문 밖 순교 성지

 

 

 

단일 순교지로 가장 많은 순교 성인과 복자들이 탄생한 곳 

 

 

 

 

- 서소문 밖 순교 성지 순교자 현양탑 -

 

 

* 서소문 밖 순교 성지는 "서소문 밖 네거리"로 불리던 곳으로 새남터와 더불어 조선 왕조의 공식 처형장이었다. 1801년 신유박해 때부터 1866년의 병인박해까지 오랫동안 천주교 신자들의 처형지로 이용된 이곳에서 한국 교회의 103위 성인 중 44위가 순교하였으며, 순교 복자 124위 가운데 25위가 서소문 처형장에서 참수형으로 목숨을 바친 신앙의 증거지이다. 신유박해 이후 이곳에서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신앙 때문에 처형되었는데, 이들은 대부분 정법(곧 참수형)을 당하였지만, 황심 토마스와 황사영 알렉시오만은 능치처사 판결을 받았다.

 

                                                                

 

 

 

서소문 형장

 

서소문 밖의 형지로 알려져 온 곳은 지금의 서소문 공원 옆에 있던 이교(흙다리)의 남쪽 백사장으로, 무악산에서 발원하여 용산으로 흐르는 만초천 변이었으며, 서소문을 지나 비탈진 언덕길 아래에 있었다. 그 인근에는 마을들이 있었는데, 17세기 후반에 들어서는 시전이 발달한데다가 마포와 아현 방향으로 통하는 길목이었으므로 사람들의 왕래가 많았다. 기록상으로는 연산군 때부터 이곳에서 죄인들을 처형한 사실이 나타나나 그 이전부터 이미 처형지로 이용해 왔음이 분명하다. 이곳을 형장으로 설정한 이유는 <서경>에 "형장은 사직단 우측에 있어야 한다"고 한 것과 관련이 있지 않나 생각된다. 특히 조선 후기에는 성 밖이면서도 형조나 포도청과 가까웠던 까닭에 이곳이 주로 한양의 형장으로 이용되었다.

 

 

 

 

 

 

 

 

 

 

 

 

 

 

 

 

 

 

 

 

- 순교자 현양탑에 새겨진 서소문에서 순교한 44위 성인과 순교 복자 명단 -

 

 

* 서소문 밖의 처형장에서 신유박해(1801년) 40위, 기해박해(1839년) 순교자 41위가 순교하였으며, 병인박해(1866년 이후) 에도 많은 신자들이 죽임을 당했다. 이 가운데 기해박해로 순교한 41위는 모두 1984년 5월 6일 성인품에 올랐고, 병인박해 순교자들 중에서 남종삼 요한과 전장운 요한, 최형 베드로 등 3위가 성인품에 올랐다. 그리고 이들보다 먼저 삶으로, 죽음으로 하느님을 증거한 신앙의 선조들인 신유박해 순교자 25위가 2014년 8월 16일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이들이 신앙을 증거하였던 광화문 광장에서 복자 반열에 올랐다.

 

 

 

 

 

*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오랫동안 시복 시성이 추진되고 아울러 순교자 현양 운동이 계속 전개되어 왔지만, 서소문 밖 형장은 도시 개발로 인해 흔적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1977년에는 이곳에 새로 서소문 공원이 조성되었다. 이에 교회 당국에서는 옛 순교터를 사적지로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1984년에는 103위 시성식을 계기로 한국 순교자 현양위원회에서 공원 안의 동쪽 편에 '서소문 순교 현양탑'을 건립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부터 인근에 아파트가 들어서고 공원이 새로 단장되면서 이 현양탑은 헐리고 말았다. 그 후 서울대교구에서는 새로이 '서소문 밖 순교자 현양탑'을 제작하여 1999년 5월 축성식을 거행하였다.

 

 

 

 

 

 

 

 

 

 

 

- 중림동 약현 성당-

 

 

 

중림동 약현 성당: 한국 최초의 서양식 벽돌조 건물

 

 

* 서소문 순교 성지를 관할하고 있는 인근에 위치한 중림동 성당은 설립 당시 '약현'이라 명명되었다가 이후에 '중림동'으로 변경되었다. 그러나 2007년 7월 다시 그 이름을 찾아 '중림동 약현 성당'을 정식 이름으로 삼게 되었다.

 

-  '약현'은 '약초 고개'라는 이름으로 오늘날의 만리동에서 서울역으로 넘어 오는 고개에 약초가 많다하여 붙여진 이름이었다. 1887년 블랑 주교는 남대문 밖 수렛골(현 중구 순화동)에 집 한 채를 매입하여 교리 강습소로 이용하였는데, 이후 강습소는 신자들이 모임에 따라 약현 공소로 변모하였다. 그러나 공소 설립 직후부터 그 교세가 종현(현 명동) 본당을 능가할 정도로 빠르게 확산되면서 새로운 성당을 건설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 이에 당시 종현 본당의 주임이었던 두세 신부는 뮈텔 주교의 동의를 얻어 사대문 밖 약현 언덕과 합동 인근의 토지를 매입하여 성당 건설을 추진하였다. 1891년 10월 정초식을 거행하여 10개월 후인 1892년 9월 완성된 이 성당은 서울대교구에서는 두 번째 본당이며, 전국적으로는 열 번째로 설정된 본당이요, 한국 최초의 서양식 벽돌조 건물이다. 당시 약현 본당은 사대문 밖의 전 지역을 관할하였고, 가깝게는 도성 주변의 서울 지역과 경기도 일대, 멀게는 송도(현 개성)을 지나 황해도 배천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을 관할하였다.

 

- 고딕풍의 성당으로 규모는 크지 않으나 번잡한 장식이 없어 장중한 느낌을 주는 성당은 1998년 2월 11일 방화로 소실되었으나 1999년 복원되었다. 1977년 사적 제252호로 지정되었다.

 

 

 

-  서소문 순교 성지 전시관 -

 

 

서소문 순교 성지 전시관

 

* 중림동 약현 성당은 1991년 본당 설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서소문 순교자 기념관을 건립하여 전시관을 운영해오다가 2009년 9월 13일 "서소문 순교 성지 전시관"을 새롭게 열었다.

 

 

- 서소문 순교 성지 전시관 내부 -

 

 

 

 

 

 

 

 

 

 

 

 

 

 

 

<서소문 밖 순교 성지 순례 안내>

 

 

                       * 미사시간: 매주 금요일 오전 10시(서소문 밖 순교 성지 현양탑 앞)

 

                      * 기타사항: 주차장 있음

 

                      * 교통편:

                        대중교통 이용: 지하철 1,4호선 서울역 하차

                                                 지하철 2,5호선 충정로역 5번 출구

 

 

 

<순교자 순교 성지 전시관 안내>

 

* 개관 시간: 오전 9시 ~ 오후 6시

* 휴관: 매주 월요일, 설날과 추석 연휴기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