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필’로도 불렸던 우세영은 황해도 서흥(瑞興) 향교 마을에서 태어났다. 18세 때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우연히 알게 된 김 요한이라는 회장의 권면으로 관직의 뜻을 버리고 서울로 내려가, 정의배에게 교리를 배우고 장(베르뇌) 주교에게 세례성사를 받았다. 그 뒤 부모의 반대를 인내와 열정으로 참아 내어 가족들을 입교시키고 신앙 생활을 위해 평안도 논재로 이사했다. 1866년 병인 박해가 일어나자 2월 16일 이웃 마을인 고둔리 공소에서 유정률 등 5명의 교우와 함께 체포되었으나 평양 감영에서 혹독한 고문에 못 이겨 배교하고 석방되었다. 그러나 곧 배교한 것을 후회하고 서울로 내려가 스승 정의배를 만나러 갔다가, 이미 체포된 정의배의 집을 지키고 있던 포졸들에게 자수하였다. 같은 해 3월 11일 신 신부, 박 신부, 스승 정의배와 함께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을 받고 22세의 젊은 나이로 순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