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위 복자 약전

No.109 구한선 타대오
구한선 타대오

109. 구한선 타대오 (1844-1866)

 

구한선(具漢善) 타대오는 경상도 함안 미나리골(현, 경남 함안군 대산면 평림리)의 중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던 그는 글을 많이 읽었는데, 천주교에 입교하기 전에는 어떤 요술에 빠진 적도 있었다.

어느 날 구 타대오는 우연히 천주교 신자를 만나 교리를 듣게 되었다. 그러고는 곧바로 이를 받아들여 그에게 교리를 배운 다음, 다블뤼(A. Daveluy, 安敦伊) 주교에게 세례를 받았다. 이후 약 10년 동안 열심히 교리를 실천하다가 리델(F. Ridel, 李福明) 신부의 복사로 선택되어 거제도 전교에 동행한 적도 있었다.

1866년 병인박해가 시작된 뒤에, 구 타대오는 리델 신부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와 지내던 중 진주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그곳 관아로 압송되었다. 이윽고 관장 앞으로 끌려 나간 그는 갖가지 문초와 형벌을 받으면서도 결코 신앙을 버리지 않았다. 또한 옥에 갇혀서는 주요 교리를 설명한 글을 적어 관장의 부인에게 전하였다.

구 타대오의 글을 읽은 그 부인은, 관장에게 그를 석방해 주라고 요청하였고, 이 말을 들은 관장은 더욱 화가 나서 구 타대오를 옥에서 끌어내어 혹독하게 매질을 하라고 시켰다. 그럼에도 구 타대오는 ‘아프다.’는 신음 소리 한번 내지 않았다. 이에 관장이 화가 나서 ‘제대로 매질을 하지 못한다.’며 형리들을 꾸짖자, 형리들은 ‘제대로 매질을 하는 것입니다. 만일 더 때리면 그가 죽을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관장이 이번에는 구 타대오를 향해 “어찌하여 ‘아프다.’는 소리 한번 내지 않느냐?”하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늙으신 어머니가 문밖에 있을 터인데, 만일 신음 소리를 내면 어머니가 이를 듣고 기절하실 것이므로 신음 소리를 내지 않았습니다.” 또 관장이 “그러면 어찌하여 천주교를 신봉하였느냐?”하고 묻자, 구 타대오는 “부모에게 효도를 하라고 가르치므로 천주교를 신봉하였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이처럼 모진 형벌을 당한 뒤에, 구 타대오는 석방되어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그 형벌로 7일 만에 죽었으니, 당시 그의 나이는 22세였다. 순교한 뒤 그의 이마에는 ‘품’(品)자 모양의 붉은 점이 찍혀 있었다고 한다. 구한선 타대오의 시신은 그의 가족이 고향 인근에 안장하였다.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하느님의 종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약전
 
  출처: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하느님의 종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약전
   (2017. 10. 20. 제3판 1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