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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자 구한선 타대오 묘소

 

 

 

복자 구한선 타대오 묘소

 

 

 

제 늙은 어미가 문밖에 있으매 아프다 소리를 들으면 기절하겠기로 못하였나이다

 

 

 

- 복자 구한선 타대오 묘소(2006년 현장조사) -

 

 

 

복자 구한선 타데오(1844~1866)

 

 

* 함안 미나리골 중인 집안 출신 구한선은 우연히 천주교 교리를 접하고는 즉시 교리를 배워 성 다블뤼 주교에게 세례를 받았다.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던 중 리델 신부의 복사로 선택되어 거제도 전교에 동행한 적도 있었던 구한선 다테오는 병인박해(1866년)가 발생한 뒤 진주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그곳 관아로 압송되었다.

 

* 그가 혹독한 매를 맞으면서도 '아프다'는 신음 소리 하나 내지 않음에 화가 난 관장이 "어찌하여 '아프다'는 소리 하나 내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늙으신 어머니가 문밖에 있을 터인데, 만일 신음 소리를 내면 어머니가 이를 듣고 기절하실 것이므로 신음 소리를 내지 않았습니다."

 

 * 모진 형벌을 당한 뒤 석방되어 집으로 돌아온 그는 형벌로 인한 후유증으로 7일만에 숨을 거두었고, 가족들이 고향 인근에 시신을 안장하였다.

 

 

 

- <치명일기> 정리번호 831번, 구한선 타데오에 관한 기록 -

 

 

* 구한선 순교자의 무덤은 1959년 당시 함안 본당 신부였던 제찬규 신부의 노력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제 신부는 <치명일기>의 기록을 토대로 순교자의 무덤을 찾으려 애쓰다가 대산 공소 회장이었던 윤성학 바오로의 증언을 듣게 된다. 그는 구 타데오의 처조카인 최성순의 이야기를 전해 준다.

 

최성순은 순교자의 아들이 부친의 무덤을 사토하는 것을 보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순교자의 무덤은 신씨들의 묘소 안에 있다는 것이었다. 이 증언을 바탕으로 여러 과정을 거쳐 순교자의 무덤을 확인하게 되었다.

 

* 그후 대산 본당 초대 주임이었던 정중규 신부가 순교자의 무덤이 외교인의 묘역 안에 있음을 안타깝게 여겨 현재 위치인 평림리 가등산으로 이장하였다(1976년 9월).  그러다가 2002년 5월부터 성역화 사업을 시작하였다.

 

 

 

- 2010년 현장 방문 -

 

 

 

 

 

 

- 유해 이장 작업에 참여하였던 교우의 증언을 들으며 외교인의 묘역에 안장되었던 

현장 방문(2006년 2월)

 

 

 

- 2006년 2월 하느님의 종 시복 법정 관계자들의 현장조사 -

 

 

 

< 복자 구한선 타대오 묘소 순례 안내 >

 

 

* 문의: 마산교구 대산성당(경남 함안군 대산면 구혜리 246-3/ 전화 055-582-8051)

 

* 교통편: 대중교통 이용

 

1) 마산시외버스터미널에서 함안 대산행 직행버스 이용 - 대산 하차 - 택시 이용(요금 3,000원 - 4,000원 정도) - 구 타데오 묘소

 

2) 마산시외버스터미널에서 함안 대산행 완행버스 이용 - 중앙마을 하차 - 도보 10분 - 안내표지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