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성지

복자 구한선 타대오 묘소

복자 구한선 타대오 묘소

 

“부모에게 효도를 하라고 가르치므로 천주교를 신봉하였습니다.”

 

 

 복자 구한선 타대오 묘소 (* 사진 출처: 마산교구 홈페이지)

 

 

복자 구한선 타대오(1844~1866)

구한선 타대오는 경상도 함안 미나리골(현 함안군 대산면 평림리)의 중인 집안 출신으로, 우연히 천주교 교리를 접하고는 즉시 교리를 배워 성 다블뤼 주교에게 세례를 받았다.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던 중 리델 신부의 복사로 선택되어 거제도 전교에 동행한 적도 있었다. 1866년 병인박해가 시작되자 진주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진주 관아로 압송되었다.  모진 형벌을 겪고 석방되어 집으로 돌아왔으나 형벌로 인한 후유증으로 7일만에 숨을 거두었다. 당시 그의 나이는 22세였다.

 

순교자 무덤 발굴

구한선 순교자의 무덤은 1959년 당시 함안 본당 주임 제찬규 신부의 노력으로 알려졌다.  <치명일기>의 기록을 토대로 순교자의 무덤을 찾던 가운데 대산 공소회장 윤성학 바오로의 증언을 듣게 된 것이다.  윤 회장은 구 타대오의 처조카 최성순으로부터, 구 타대오의 아들이 부친의 무덤을 사토(莎土:무덤에 떼를 입혀 잘 다듬는 일)하는 것을 보았다는 말과, 순교자의 무덤은 신씨들의 묘소 안에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이 증언을 바탕으로 다른 이들의 증언을 추가로 듣는 과정을 거쳐 마침내 순교자 구한선의 무덤을 확인하였다. 그 뒤 순교자의 무덤이 외교인의 묘역 안에 있음을 안타깝게 여긴 대산 본당 신자들은 1976년 9월  지금의 자리(함안군 평림리 가등산 자락)로 무덤을 이장하였다.

한편, 2014년 시복식 이후 구한선 복자의 유해를 인근 대산성당으로 이장하기로 결정하였고, 2026년 5월 성지조성 기공식을 가졌다.  같은해 10월 묘지 이장 작업을 진행하여 복자의 유해를 대산성당 무덤 경당 제대에 모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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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산성당 내 '구한선 타대오 경당(무덤 경당)' 제대 (* 사진 출처: 마산교구 홈페이지)

 

 

 대산성당 내 구한선 타대오 복자화 (* 변진의 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