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조 치하 순교자 133위

133위 시복 대상자 약전

No.102 김입돌 베드로

102. 김입돌 베드로 (1849∼1868)

 

김입돌(金立乭) 베드로는 서울 남문 밖 자암(紫岩, 현 서울 중구 봉래동⋅순화동⋅의주로)에서 김성실(金成實, 베드로)과 이 바르바라의 작은 아들로 태어났다. 아명은 ‘익돌’이었고, 부친 베드로는 1871년에 포도청에서 순교하였다.

집안에서 일찍이 천주 신앙을 받아들였으므로, 김입돌 베드로도 어렸을 때부터 모친에게 천주 교리를 배웠으며, 정의배(丁義培, 마르코) 회장 집에서 세례와 세례명을 받았다. 이후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던 그는 마르코 회장의 인도로 다블뤼(A. Daveluy, 安敦伊 안토니오) 주교를 만났으며, 베르뇌(S. Berneux, 張敬一 시메온) 주교에게 고해성사도 받았다.

1866년의 병인박해가 계속되자, 베드로는 1868년 2월(음력)에 강릉으로 피신하였다. 그러다가 4월(음력)에 박해 상황을 살피기 위해 상경하여 이웃집에 들렀는데, 이곳에서 포교에게 체포되었다. 그때 포교들이 “친척과 아는 사람들의 이름을 말하라.”고 했지만, 그는 “가족들 외에는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또 “너는 아직 어리니 배교한다는 한마디만 하면 놓아 주겠다.”고 하자, 그는 “배운 것도 많지 않아 부모님께 늘 걱정을 끼쳐드렸는데, 어찌 배교까지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면서 자신의 신앙을 증거하였다.

이내 좌포도청으로 압송되어 문초와 형벌을 받게 된 김입돌 베드로는 다시 한 번 다음과 같이 굳게 신앙을 증거하였다.

 

알고 있는 교우들은 대부분 순교했거나 다른 곳으로 피신했고, 그들이 간 곳은 알 수 없습니다. 비록 형벌 아래 죽을지라도 배교할 수 없습니다.

 

그 결과 베드로는 1868년 5월 23일(음력 윤4월 2일) 이후에 포도청에서 모진 형벌을 받고 옥중에서 순교하였으니, 당시 그의 나이 19세였다.

 

* 굵은색 표시: 약전 출간(2018년) 이후 수정된 내용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약전
 
 
  출처: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약전
  (2018. 4.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