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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남양113. 박 마리아 (1812∼1868)
박 마리아가 어디 출신인지는 기록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녀는 장성한 뒤 충청도 면천 중방(현 충남 당진시 순성면 중방리)에 살던 김 필립보와 혼인한 뒤 자녀들에게 교리를 가르쳐 본분을 잘 지키게 하였고, 비신자들에게도 복음을 전하는 데 노력하였다. 이후 그들 부부는 수원 걸매(현 충남 아산시 인주면 걸매리)로 이주해 살았는데, 마리아는 남편 필립보가 회장 소임을 맡자 열심히 남편을 도와주었다.
1866년의 병인박해가 일어난 뒤 마리아는 남편 필립보와 함께 신창 남방재(현 아산시 신창면 남성리)로 이주해 살았다. 그러다가 1868년에 다시 박해가 심해지자 홍주 신리(현 충남 당진시 합덕읍 신리)에 살던 사위의 집으로 피신했는데, 얼마 안 되어 남양(南陽)에서 파견된 포교들이 그곳으로 들이닥쳐 남편 필립보를 체포하였다.
남편 필립보는 포교들 앞에서 굳게 신앙을 증거한 뒤 남양으로 압송되었다. 이때 박 마리아는 남편과 포교가 ‘따라오지 말라’고 말렸음에도 이를 듣지 않고 ‘남편을 따라가 함께 죽겠다’고 하면서 자원하여 따라갔다. 그런 다음 남양 옥에 한 달 정도 갇혀 있다가 1868년 9월 18일(음력 8월 3일) 남편 필립보와 함께 교수형으로 순교하였으니, 당시 그들 부부는 동갑내기로 56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