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조 치하 순교자 133위

133위 시복 대상자 약전

No.115 최용운 암브로시오

관련 장소

청주, 보은, 충주

115. 최용운 암브로시오 (1836~1868)

 

최용운(崔龍雲) 암브로시오 회장은 1836년 충주에서 태어났으며, 세속 학문을 닦던 중에 우연히 천주 교리를 접하게 되었다. 이에 그는 이 교리를 배우겠다는 생각에서 신자들이 비밀리에 모여 살던 보은(報恩) 멍에목 교우촌(현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구병리)으로 이주하였다. 그리고 이곳에서 여 요한에게 천주 교리를 배워 최양업 토마스 신부에게 영세 입교하였다.

그에 앞서 최양업 신부는 1851년에 멍에목 교우촌을 방문하여 신자들에게 성사를 주고, 예비 신자 조 바오로 등에게 세례를 주었다. 그러나 이 일로 인해 멍에목 신자들은 바오로의 동생의 반감을 사게 되었고, 끝내는 그에게서 “관아에 고발하겠다.”는 협박을 받고 얼마 동안 다른 곳으로 피신해 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다가 위협이 사라지자 다시 멍에목으로 모여들어 비밀리에 신앙생활을 하였다. 암브로시오가 최양업 신부에게 세례를 받은 것은 바로 이 무렵이었을 것이다.

입교한 뒤 암브로시오는 누구보다 열심히 교리를 실천했으며, 이내 그의 굳은 신심은 모든 이들의 주목을 끌게 되었다. 그 결과 그는 1864년에 멍에목 교우촌을 방문한 한 선교사로부터 그곳 회장으로 임명되었으니, 당시 그의 나이 28세였다.

이때부터 암브로시오 회장은 자신의 본분을 다하고, 교우촌 신자들에게 열심히 교리를 가르치면서 회장의 본분을 다하였다. 그러던 중 1866년의 병인박해가 시작되자 멍에목에서 가까운 상주(尙州) 장재동(현 경북 상주시 화남면 동관리의 장자동)으로 피신하여 신앙생활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박해는 종식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2년 뒤인 1868년에는 더욱 박해가 가열되었다. 이때 서울에서 파견된 포교와 포졸들에 의해 멍에목 교우촌이 발각되었으며, 멍에목으로 들이닥친 포교와 포졸들은 다른 곳으로 피신하지 않고 있던 여 요한과 교우들을 체포하였다. 그런 다음 요한을 앞세우고 암브로시오 회장이 살고 있던 상주 장재동으로 몰려갔다.

암브로시오 회장과 여 요한 등은 곧 보은 지역을 관할하던 청주 진영(현 충북 청주시 남문로 1가)으로 압송되었다. 이때부터 암브로시오 회장은 진영의 옥에 갇혀 있으면서 관장 앞으로 끌려 나가 문초와 형벌을 받곤 하였지만, 조금도 여기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의 교리 스승 여 요한이 신앙을 되찾아 순교에 이를 수 있도록 열심히 권면하기까지 하였다. 그러고 나서 사형 판결을 받고 태연하게 형장으로 나가 순교했으니, 때는 1868년 4월 이후(음력)로 당시 그의 나이 32세였다.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약전
 
 
  출처: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약전
  (2018. 4.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