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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보은, 충주116. 김 마르티노 (1805~1868)
김 마르티노는 충청도 연풍(延豊) 사람으로 일찍이 천주 교리를 배워 영세 입교했으며,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열심히 수계 생활을 하였다. 그의 집안은 아들 마태오와 손자 마티아까지 삼대가 모두 입교한 성가정이었다.
1866년의 병인박해 때 마르티노의 가족은 다행히 박해자의 손길을 피할 수 있었으나, 2년 뒤인 1868년에는 그의 가족에게도 박해가 몰아닥쳤다. 이때 그의 손자 마티아가 가장 먼저 체포되었고, 이 소식을 들은 아들 마태오마저 순교를 결심하고 관가에 자수하였다.
아들 마태오는 집을 떠나기 전에 당부하기를 “제가 관가에 들어가면 필경 포졸들이 나와서 아버님도 체포할 것입니다. 그러면 아버님도 제 뒤를 따르셨으면 합니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마르티노는 “오냐, 너나 관가에 가서도 마음을 변치 않도록 해라. 나는 이미 예순이 넘은 데다가 앉은뱅이마저 되었으니, 세상에서 무엇을 바라고 이렇게 좋은 때를 놓치겠느냐?”라고 대답하면서 순교 의지를 확인해 주었다.
충주 진영에 자수한 마태오는 온몸이 쇠사슬로 묶인 채 아들 마티아와 함께 투옥되었다. 이때 그는 아들 마티아에게 “네가 나가야만 남은 식구들을 돌보고, 그들이 구령(救靈)에 힘쓰도록 도울 수 있다. 그러니 내 생각은 하지 말고 나가도록 해라.”고 당부하면서 옷을 벗어주려고 하였다. 그러나 쇠사슬 때문에 옷을 벗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마태오가 잠깐 기도를 하자 그의 몸을 감고 있던 쇠사슬이 저절로 풀려 옷을 벗어줄 수 있었다고 한다.
아들 마태오가 자수하러 간 뒤, 마르티노는 다른 곳으로 피신하지 않고 그대로 집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며칠 후 진영에서 파견된 포졸들이 체포하러 오자, 태연하게 웃으면서 그들이 가져온 들것에 실려 진영으로 압송되었다. 그러자 진영에서는 그의 손자 마티아를 석방해서 집으로 돌려보냈다.
이후 마르티노는 아들 마태오와 함께 옥에 갇혀 있으면서 때때로 문초와 형벌을 받았지만, 언제나 이를 굳게 참아냈다. 그뿐만 아니라 함께 갇혀 있던 교우 12명이 형벌을 두려워해서 배교하고 나가려 하자, 큰소리로 그들을 힘써 권면하여 신앙을 회복하도록 하였다. 그런 다음 아들과 함께 영장 앞으로 끌려나가 치도곤 두어 대를 맞는 동안 하느님께 자신을 바쳤으니, 당시 마르티노의 나이는 63세, 아들 마태오의 나이는 39세였다.
순교하던 날 마르티노는 아들 마태오와 함께 계응으로 기도문을 외우면서 화답했는데, 그 소리가 노래 곡조같이 청아했고, 순교 후의 안색은 생시와 같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