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조 치하 순교자 133위

133위 시복 대상자 약전

No.117 박태진 마티아
  1. 박태진 마티아 (1819∼1868)

 

박태진 마티아의 본은 밀양이며, ‘태진’은 그의 보명(譜名: 족보에 기록된 이름)이다. 그의 고향은 홍주 원머리(현 충남 당진시 신평면 한정리)로, 그의 선대에 박해를 피해 이곳에 정착하여 염전을 일구면서 살았다.

원머리 일대에는 일찍부터 천주 신앙이 전파되었으나, 마티아의 집안에서는 뒤늦게 신앙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집안의 비신자 어른들 때문에 교리를 실천하는 데 어려움이 따랐으며, 신부가 올 때마다 성사를 받기도 어려웠다. 그럼에도 그는 사촌인 박선진 마르코와 함께 교우들과 연락하면서 꿋꿋이 신앙을 지켰다.

1866년과 1867년에 원머리 교우들 몇몇이 체포되어 순교했으나, 마티아와 마르코는 체포되는 것을 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2년 뒤인 1868년 가을에 원머리로 들이닥친 수원 포교들에게 함께 체포되어 수원으로 압송되었다.

박태진 마티아는 수원 관아에 이르러 문초와 형벌을 받게 되자 잠시 마음이 약해지게 되었다. 이때 사촌인 마르코가 그에게 “이제는 배교하여도 죽을 것이다. 그러니 큰 임금을 배반하고 죽어서 지옥의 영원한 벌을 받아 어찌 하겠느냐?”고 권면하였고, 이에 마티아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박해자들 앞에서 꿋꿋이 신앙을 증거하였다. 그런 다음 옥에 갇힌 지 15일 만에 사촌 마르코와 함께 교수형으로 순교했으니, 당시 마티아의 나이 49세였다.

마티아와 마르코가 순교한 뒤, 그들의 시신은 같은 마을에 살던 서덕행에 의해 거두어져 원머리(현 신평면 한정리 233번지)에 나란히 안장되었다.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약전
 
 
  출처: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약전
  (2018. 4.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