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조 치하 순교자 133위

133위 시복 대상자 약전

No.120 이문홍 바오로

120. 이문홍 바오로 (?~1866)

 

이문홍(李文弘) 바오로는 송도(개성) 덕바위[德巖里]의 양반 출신으로, 성품이 강직하고 일처리가 확실하여 온 마을 사람들이 칭송하였다. 그는 40세 무렵에 천주 교리를 접할 수 있었는데, 그 내용에 감복하여 곧바로 입교하였다. 그런 다음 상경하여 베르뇌(S. Berneux, 張敬一 시메온) 주교에게 세례를 받은 그는 고향으로 내려와 벙어리였던 아내와 자식에게 교리를 가르쳐 입교시켰으며, 함께 교리를 실천하고 열심히 기도하였다.

바오로는 이웃에게 교리를 전하고 마귀를 몰아내는 데도 열심이었다. 그 결과 덕바위 인근에서는 김쾌령(金快㱓, 아녜스), 전주경(全周卿, 사도 요한), 김일돌(金一乭, 시몬), 박흥길(朴興吉, 타대오) 등 수많은 사람들이 천주 신앙을 받아들여 입교하게 되었다. 이에 그는 1863년에 베르뇌 주교를 자신의 집으로 모셔와 교우들이 성사를 받을 수 있도록 했으며, 베르뇌 주교는 바오로를 송도 회장에 임명하였다.

이후 바오로 회장은 서울의 정의배(丁義培, 마르코) 회장, 최인서(崔仁瑞, 요한) 등과도 교류하였고, 서울로 가는 교우를 만나면 자신의 집에 유숙토록 하거나 노자돈을 도와주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교우들은 그를 ‘서도주인’(西道主人)이라고 높여 부르면서 칭송하였다. 그러던 중 바오로 회장은 아내를 잃게 되었고, 이후에는 평생 동정이신 성모 마리아의 정덕(貞德)을 따르기 위해 성의회(聖衣會)에 가입하였다.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이문홍 바오로 회장은 얼마 동안 황해도 토산(兎山) 장개 근처에 사는 신입 교우 백 서방의 집으로 피신하였다. 그러나 그를 찾아다니던 경포, 곧 서울의 포교들에게 체포되었다. 그때 포교가 “백 서방도 천주교 신자이냐?”고 묻자 바오로 회장은 “백 서방은 천주교와는 상관없다.”고 대답하여 백 서방을 보호해 주었다. 그런 다음 바오로 회장은 우포도청으로 압송되어 신앙을 증거한 뒤에 순교하였다.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약전
 
 
  출처: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약전
  (2018. 4.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