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장소
구산, 천진암, 남한산성, 뫼룬리
서태순(徐泰淳) 아우구스티노는 경기도 양지(陽智, 현 용인시) 출신으로, 일찍이 부모의 교훈을 받아 열심히 교리를 실천하였고, 산골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생활하였다. 이후 그는 사위 이조여(李祖汝) 요셉 가족과 함께 광주(廣州) 유수부 관할 지역인 광주 뫼룬리(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운중동)로 이주해 살았는데, 이웃 교우들을 권면하여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도록 했으며, 인정이 많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1866년의 병인박해가 일어났을 때 아우구스티노는 뫼룬리 자신의 집에 프랑스 선교사 볼리외(L. Beaulieu, 徐沒禮 루도비코) 신부를 모시고 있었다. 그러나 볼리외 신부는 박해 직후 서울 포교에게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었고, 아우구스티노는 사위 요셉을 비롯한 마을 교우들과 함께 광주 포교에게 체포되어 남한산성에 있는 유수부로 압송되었다.
포교들은 아우구스티노가 신부댁 주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재산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다른 이들에 비해 더 혹독한 형벌을 가하였지만, 그는 위주치명(爲主致命)을 각오하고 굳게 신앙을 증거하면서 결코 형벌에 굴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사위 요셉을 비롯하여 동료 교우들과 함께 매질 아래서 순교하였으니, 때는 1866년 2월(음력)로, 그의 나이 37세였다.
(2018. 4. 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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