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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산, 천진암, 남한산성, 뫼룬리81. 정양묵 베드로* ( ? ∼1867)
정양묵 베드로는 경기도 이천 단내(현 이천군 호법면 단천리) 출신으로, 재종조부인 정은(鄭溵) 바오로에게서 교리를 배워 입교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후의 신앙생활에 대한 내용은 나타나지 않는다.
1866년의 병인박해가 한창이던 12월 19일(음력 11월 13일)에 광주 포졸들이 정은 바오로를 체포하기 위해 단내 마을로 왔다는 소식을 들은 베드로는 순교할 원의를 가지고 바오로를 따라가려고 하였다. 이때 그의 아내가 옷을 붙들고 간절히 만류하였지만, 베드로는 이를 떨쳐버리면서 “재종조부께서 체포되셨으니, 이러한 때를 당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표양을 본받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말하고는 포졸들 앞으로 나가 천주교 신자임을 고백하였다.
정 베드로는 정은 바오로와 함께 광주 관장 앞으로 압송되었다. 그러자 관장은 그들이 천주교 신자임을 확인한 뒤, “다른 신자들이 있는 곳을 대라.”고 명령하였다. 이에 베드로와 바오로는 한결같이 “아는 신자가 없다.”고 분명하게 대답하였다. 그리고 함께 문초와 형벌을 받으면서 굳게 신앙을 증거하였다.
이후 베드로와 바오로는 함께 옥살이를 해야만 하였다. 그러다가 1867년 1월 13일(음력 1866년 12월 8일) 광주 남한산성의 형장에서 함께 순교하였으니, 순교 당시 그들이 받은 형벌은 얼굴에 물을 뿜고 한지를 그 위에 붙여 숨이 막혀 죽게 하는 백지사(白紙死)였다.
* 최근(2019년)에 찾은 '동래정씨' 족보(1919년)에 따르면 정 베드로의 이름은 '양묵'(亮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