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박의서 사바 (1808∼1867)
박의서 사바는 대대로 수원 걸매(현 충남 아산시 인주면 걸매리)에 살던 밀양(密陽) 박(朴)씨 집안의 삼형제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1866년 서울에서 순교한 박흥갑은 사바의 아들이고, 1867년 수원에서 사바와 함께 순교한 박원서 마르코와 박익서는 사바의 동생들이다. 그의 집안은 선대에 이미 아산만의 방조제 축조와 간척 사업을 주도하여 지역 사회에 도움을 준 것으로 이름이 나 있었다.
사바의 집안에서 처음으로 천주 신앙을 받아들인 것은 조부 박종학(朴宗鶴, 1751~1836년)으로, 그 시기는 1784년 말에 한국 천주교회가 설립되고 이어 이존창(李存昌, 루도비코 곤자가)에 의해 내포(內浦) 지역에 천주 신앙이 전파되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때였다. 그러므로 사바는 어려서부터 집안의 신앙을 이어받게 되었고, 부친 박상환(朴常煥)도 어린 자식들에게 열심히 교리를 가르쳤다.
장성한 뒤 사바는 걸매 교우촌의 회장으로 임명되어 교우들의 신앙생활을 이끌어 나갔다. 그러던 중 1866년의 병인박해가 일어나 사바 회장의 아들 박흥갑과 이웃 교우들이 체포되자, 사바 회장과 형제들의 가족은 모두 박해를 피해 예산 여사울(현 충남 예산군 신암면 신종리)로 이주해 살았다. 그러나 이듬해에는 수원 포교가 다시 들이닥쳐 걸매에 남아 있던 교우들은 물론 여사울에 살던 사바의 형제들과 사촌 박인서, 박원서 마르코의 아내 이 마리아 등을 체포하였다.
이때 박의서 사바 회장은 아우인 박원서 마르코가 평소의 잘못을 뉘우치면서 순교를 다짐하는 말을 듣고는 용기를 내서 “우리 삼형제 모두 주님을 위해 순교하도록 하자.”고 다짐하였다. 그런 다음 체포된 이들과 함께 수원 관아로 압송되었으며, 그곳에서 삼형제가 한결같이 천주교 신자임을 굳게 증거한 뒤 순교하였으니, 때는 1867년 3월이요, 당시 사바 회장의 나이는 59세였다.
순교 후 사바 회장과 아우들의 시신은 당질인 박웅진 바오로 등에 의해 거두어져 아산 맹고개(현 충남 아산시 인주면 냉정리)에 안장되었다. 그리고 1988년 9월 20일에는 사바 회장과 형제들의 무덤이 맹고개에서 확인 발굴되었으며, 같은 날 이들의 유해가 공세리 성당 경내로 옮겨져 안치되었다. 이어 1996년 9월 19일에는 성당 경내의 무덤 옆에 순교 현양비가 건립되었고, 2007년 11월 20일에는 순교자들의 유해가 안치된 납골식의 순교자 현양탑이 완공 봉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