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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남양89. 김양범 빈첸시오 (1804~1867)
김양범 빈첸시오는 1815년의 을해박해(乙亥迫害) 때 강원도 원주에서 순교한 복자 김강이(金鋼伊) 시몬의 둘째 아들로, 부친이 경상도 지역으로 이주해 있을 때 태어난 것으로 보인다. 부친이 순교할 당시 빈첸시오는 11세에 불과하였다.
빈첸시오는 어린 시절에 박해를 겪은 탓에 가난한 생활을 해야만 했으나, 품행이 바르고 부지런했으므로 장성한 뒤에는 열심히 농사를 지어 많은 재산을 모으게 되었다. 그러던 중 1859년에 또다시 박해를 당해 집과 세간, 전답 등을 모두 버리고 피신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데, 이때 관가에서 그의 재산을 모두 몰수하였다.
이후 빈첸시오는 충청도 홍주 거더리(현 충남 예산군 고덕면 상궁리와 당진시 합덕읍 신리 사이의 마을)에 정착하여 자신의 집을 공소(公所)로 내놓았다. 그리고 신부의 순방 때가 되면 복사가 되어 봉사하였다.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김양범 빈첸시오는 가족들을 데리고 다른 곳으로 피신하였다. 그 와중에서 그의 아들 김선행 필립보는 1867년 가을에 수원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수원에서 순교했으니, 당시 필립보의 나이는 40세였다.
아들이 체포된 지 얼마 안 되어 빈첸시오는 며느리를 만나러 가다가 밀고자가 이끌고 온 수원 포졸들에게 체포되었다. 그때가 1867년 9월(음력)이었다. 그는 체포될 당시에도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이 태연한 모습이었으며, 이미 주님을 위해 순교할 원의를 갖고 있었다. 그런 다음 수원으로 끌려간 지 얼마 안 되어 매질 아래 순교하였으니, 당시 그의 나이는 63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