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조 치하 순교자 133위

133위 시복 대상자 약전

No.92 이제현 마르티노

92. 이제현 마르티노 (1811~1867)

 

이제현(李濟鉉) 마르티노(또는 빈첸시오)는 서울 서부 양동(陽洞, 현 서울 중구 남대문로 5가)에서 태어났으며, 두살 때 부친을 여의었다. 그는 11세(1822년) 때부터 형에게 교리를 배웠고, 이후 모친과 형과 함께 열심히 신앙을 실천하였다.

이제현의 가족은 1824년에 홍주 북면 마수리(馬首里)로 이주하여 농사를 지으며 생활하였다. 그러다가 장성한 뒤에는 홍주 신리(현 충남 당진시 합덕읍 신리)에 살던 손경서(孫景瑞, 안드레아)와 교류하게 되었고, 서울 사는 유진길(劉進吉, 아우구스티노)에게서 세례도 받았다. 또 1834년 조선에 입국한 중국인 유방제(劉方濟, 파치피코) 신부를 만나 성사를 받았으며, 얼마 뒤에는 견진성사까지 받았다.

1859~1860년 무렵에 이제현은 내포 지역을 순방하던 다블뤼(A. Daveluy, 安敦伊 안토니오) 주교를 만나 자주 성사를 받으면서 가까워지게 되었으며, 서울에 사는 정의배(丁義培, 마르코) 회장과도 교류하였다. 그러던 중 1866년에 병인박해가 일어나 프랑스 선교사와 신자들이 체포되어 순교하였고, 이제현도 이듬해 길에서 공문을 가지고 상경하던 홍주 포교에게 체포되어 우포도청으로 압송되었다.

이제현은 포도청의 문초와 형벌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엄한 문초 가운데서도 교우들을 한 명도 밀고하지 않았으며, ‘배교하라’는 명령에는 “45년 동안 믿어 온 천주교를 어찌 버릴 수 있겠습니까?”라고 항변하였다. 그런 다음 “저는 지금 죽는다 하더라도 돌아갈 곳이 있습니다. 지금 죽는다면 천당의 영광스러운 부귀가 눈앞에 있습니다. 그러니 빨리 죽기만을 바랄 뿐입니다.”라고 신앙을 굳게 증거하였다. 그 결과 그는 1867년 11월 23일(음력 10월 28일)에 군문효수형을 선고받고 순교했으니, 당시 그의 나이 56세였다.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약전
 
 
  출처: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약전
  (2018. 4.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