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 송백돌 베드로 (1823~1867)
송백돌(宋百乭) 베드로는 서울 남묘(南廟, 현 서울 용산구 도동 1가) 앞에서 태어나 어교(漁橋, 현 서울 중구 광희동 인근)에 살면서 갖바치로 가죽신을 만들어 팔며 생활하였다. 자(字)는 ‘치명’이다. 그의 부친은 신자가 아니었지만 모친이 신자였으므로, 베드로는 모친의 가르침을 받아 천주 교리를 배워 입교하게 되었다.
어느 날 비신자였던 베드로의 부친은 집안에 민며느리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민며느리를 들이는 것이 교회의 가르침에 어긋난 일임을 안 베드로는 그녀를 내보내고, 시흥 방아고지(현 경기도 시흥시 미산동 방아다리골인 듯)의 교우인 임 씨와 결혼하여 4남매를 얻고 함께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다.
송백돌 베드로가 체포된 것은 1866년의 병인박해가 일어난 이듬해였다. 사기점을 하던 김경장이 체포되어 형벌을 받으면서 형벌을 이기지 못하고 그의 이름을 발설한 것이다. 이내 우포도청으로 끌려간 베드로는 감옥에서 김경장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를 본 김경장이 “내가 형벌을 견디지 못하여 자네 이름을 댔으니, 용서해 주시오.”라고 하면서 잘못을 빌었다. 그러자 베드로는 오히려 “당신이 내 이름을 대서 여기로 체포되어 온 것은 천주께서 나를 이리로 부르신 것이오. 그러니 마음에 두지 말라.”고 하면서 김경장을 위로하였다.
포도청에서 문초와 형벌을 받고 옥에 갇히자, 베드로는 교리 문답을 외우고, 칼머리를 두드려 장단을 맞추면서 “즐겁게 천당으로 가자.”고 교우들을 권면하였다. 그러자 옥을 지키던 포졸들까지도 그의 말을 듣고 “여러 천주학쟁이들 가운데 송백돌이 으뜸이다.”라고 칭찬해마지 않았다 한다. 이렇게 옥살이를 하면서 문초와 형벌을 받던 그는 1867년 3월 24일(음력 2월 19일) 이후에 물고(物故)로, 곧 형이 집행되기 전에 문초와 형벌 가운데서 순교했으니, 당시 그의 나이 44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