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조 치하 순교자 133위

133위 시복 대상자 약전

No.13 이부춘

관련 장소

청주, 보은, 충주
  1. 이부춘 (1735∼1801)

 

이부춘(李富春)은 충주의 아전 출신으로, 학식이 높은데다가 글씨도 잘 썼다. 또 언변도 훌륭했으며, 위엄도 있었다. 그는 이기연에게 교리를 배운 뒤 세례를 받고 입교했으며, 아들 이석중은 물론 가족과 친지들에게 천주 교리를 전하는 데 노력하였다. 그의 셋째 아들 이석중 또한 천주교에 입교한 뒤에는 과부인 권아기련을 비롯하여 여러 사람들에게 천주 신앙을 전했고, 이기연과 부친을 도와 신앙 공동체를 형성하는 데에 일조하였다. 그러나 이들 부자의 세례명은 기록에 나타나지 않는다.

이후 이부춘과 석중 부자는 주일마다 신자들과 함께 모임을 가졌으며, 1790년에 북경의 구베아(A. Gouvea, 湯士選) 주교로부터 조상 제사 금지령이 전달되자, 그 가르침에 따라 제사에 참여하지 않았다. 특히 이부춘은 훌륭한 성인들을 모범으로 삼고, 십계와 오배례(五拜禮) 등을 외우고 익히면서 신자로서의 본분을 지키는 데 충실하였다. 아들 이석중도 신앙을 실천하는 데에 장애가 될 수도 있는 상인을 업으로 삼고 있었지만, 세속의 이익이나 재물보다는 영혼의 이익과 천국의 복락을 얻는 데 노력하였다.

1801년의 신유박해가 일어난 뒤 이부춘·석중 부자와 권아기련은 각각 다른 곳에서 체포되었으나, 함께 문초와 형벌을 받았고, 세 명 모두 형벌 가운데서도 평온과 용기를 잃지 않았다. 하느님의 은총이 신자들의 마음에 어떤 기적을 불어넣어 주는지를 알지 못하던 비신자들도 그들의 꿋꿋함에 놀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 다음 이들 세 명은 함께 사형 선고를 받았고, 이부춘과 권아기련은 1801년 10월 4일(음력 8월 27일)에 충주에서, 이석중은 다른 날에 충주에서 순교하였다. 당시 이부춘의 나이는 만 67세, 아들 이석중의 나이는 만 28세였다. 그에 앞서 충주 관장이 형조에 올린 이부춘의 사형 선고문은 다음과 같았다.

“이기연과 연결되어 사학을 굳게 믿었습니다. 십계를 지키고, 오배례를 수행하고 외워서 익히기를 포기하지 않았으며, 주일날의 모임에 요란스럽게 동참했습니다. 우선 집안에서부터 이웃마을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가 물들어 더럽혀지지 않은 이가 없었고, 곧 우두머리가 되었습니다. 집안의 제사에 참석하지 않았으며, 인간의 윤리를 끊어버렸습니다.”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약전
 
 
  출처: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약전
  (2018. 4.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