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조 치하 순교자 133위

133위 시복 대상자 약전

No.26 고동이 바르바라
  1. 고동이 바르바라 (1761∼1819)

 

고동이(高同伊) 바르바라는 황해도 재령(載寧)에서 평민인 고진명(高振明)과 이조이(李召史)의 딸로 태어났으며, 장성한 뒤 이흥송(李興松)과 혼인하여 안악(安岳)에서 살았다. 그러다가 남편이 죄를 짓고 함경도 무산(茂山)으로 유배되자, 바르바라도 남편을 따라 무산으로 가게 되었다.

바르바라가 천주교를 접하게 된 것은 바로 이때였다. 1801년의 신유박해 때 무산으로 유배된 조동섬(趙東暹) 유스티노를 만나게 된 것이다. 유스티노는 비록 문초와 형벌 과정에서 마음이 약해져 유배형을 받게 되었지만, 유배 이후에는 다시 신앙을 회복하고 열심히 교리를 실천해 오고 있었다. 바르바라는 유스티노를 만나 그에게 천주 교리를 배운 뒤 열심히 교리를 실천하기 시작하였다.

그 후 남편이 사망하자, 바르바라는 남편의 시신을 선산으로 옮기기 위해 무산을 떠났고, 장례를 치른 뒤에는 오로지 하느님을 섬기는 일과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만을 생각하였다. 그리고 좀 더 신앙생활을 잘하기 위해 상경하기로 결심하고, 서울에 살고 있던 유스티노의 종손자(從孫子)인 조숙(趙塾) 베드로를 찾아갔다. 베드로는 무산으로 유스티노를 찾아왔을 때 바르바라와 만난 적이 있었다. 당시 베드로와 권천례(權千禮) 데레사 동정 부부는 사재감계(司宰監契, 현 서울시 종로구 창성동 일대)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바르바라는 그 집에 머물며 열심히 천주 교리를 배우고 계명을 실천하였다.

그러던 중 1817년 3월 말(음력)에는 조숙 베드로의 신분이 밝혀져 한성부에 체포되었다. 이때 데레사와 바르바라는 그와 헤어질 수 없다는 생각에서 베드로와 함께 체포되어 형조로 압송되었다. 이후 바르바라는 베드로 부부와 함께 문초와 형벌 가운데서도 변함없이 신앙을 굳게 증거하였으니, 그녀가 형조에서 최후로 진술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저는 오랫동안 천주교를 독실하게 믿어 왔으므로 이를 배척할 수 없습니다. 빨리 형벌 아래 죽어서 천당에 올라가기만을 바랍니다.

 

그 결과 바르바라는 베드로 부부와 함께 참수형을 선고받았으나, 곧바로 처형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므로 그들은 2년 동안이나 옥고를 겪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동안에도 바르바라는 신자의 본분을 충실히 지켰으며,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그러다가 1819년 8월 10일(음력 6월 20일) 바르바라는 베드로 부부와 함께 참수형으로 순교하였으니, 당시 바르바라의 나이 58세였다.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약전
 
 
  출처: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약전
  (2018. 4.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