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조 치하 순교자 133위

133위 시복 대상자 약전

No.30 조 바르바라
  1. 조 바르바라 (1783∼1839)

 

조 바르바라는 양반 이(李) 씨의 부인으로, 성품이 단정하고 총명하였다. 1839년의 순교 성녀 이영덕(李榮德) 막달레나이인덕(李仁德) 마리아 자매는 바로 그녀의 딸이다.

바르바라는 언제부터인가 의지할 데가 없게 된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그때 이미 그녀의 친정어머니는 천주교에 입교하여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바르바라는 두 딸과 함께 친정어머니에게 자연스레 천주 교리를 배우게 되었고, 이내 천주 신앙을 받아들여 교리를 실천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비신자였던 남편이 천주교를 반대했으므로 비밀리에 신앙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후 바르바라의 친정어머니는 선종하였으나, 바르바라 모녀는 계속해서 교리를 실천하였다. 그러다가 어느 날 남편이 지방으로 여행간 틈을 이용하여 바르바라는 두 딸과 함께 영세 입교하였다.

그러던 중 큰 딸 이영덕 막달레나가 혼인할 나이가 되자, 남편은 막달레나를 한 비신자와 혼인시키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미 동정을 지키겠다는 결심을 하고 있었던 막달레나는 부친의 명에 따를 수 없었으므로 꾀병을 부리기도 하였고, 자신의 결심을 보여주기 위해 손가락을 베어 혈서를 쓰기도 하였다. 하지만 부친의 마음은 변함이 없었고, 이로 인해 막달레나는 결혼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남편의 강요를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한 바르바라는 어느 날 두 딸을 데리고 집을 나와 교우 집에 의탁하였다. 그때 앵베르(L. Imbert, 范世亨 라우렌시오) 주교는 이 사실을 알게 되자 그들 모녀에게 집으로 돌아가도록 권유했으나, 그렇게 할 수 없는 사정임을 알고는 회장들에게 거처를 마련해 주도록 하였다. 이에 바르바라 모녀는 서강 독갑이골에 마련된 새 거처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이곳에서 그들 모녀는 비록 추위와 굶주림으로 고통을 받았지만, 마음 놓고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으므로 이러한 고통을 달게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이 가타리나조 막달레나 모녀가 바르바라 모녀가 사는 집으로 와서 함께 생활하게 되었다. 그들은 함께 용기를 북돋워 주면서 신심을 함양하였고, 박해가 닥치면 함께 순교하자고 권면하였다.

1839년 기해박해가 한창이던 5월에는 마침내 독갑이골로 포교들이 들이닥쳐 그곳에 살고 있던 다섯 사람을 모두 체포하여 포도청으로 압송하였다. 포도대장 앞으로 끌려간 다섯 사람은 문초와 주뢰형을 받았지만, 모두가 용감하게 이를 참아내면서 신앙을 증거하였고, 옥중에서도 서로를 격려하였다. 그러다가 조 바르바라는 형벌로 인해 쇠약해진 몸에 장티푸스까지 걸려 이 가타리나, 조 막달레나 모녀와 함께 옥중에서 순교하였으니, 때는 1839년 8월(음력)로, 당시 바르바라의 나이 56세였다.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약전
 
 
  출처: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약전
  (2018. 4.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