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조 치하 순교자 133위

133위 시복 대상자 약전

No.32 손 막달레나
  1. 손 막달레나 (1784∼1839)

 

손(孫) 막달레나는 1801년의 신유박해 때 체포되어 1802년 서울에서 순교한 복자 손경윤(孫景允) 제르바시오 회장의 딸로 장성한 뒤 장사광 베드로와 혼인하였다. 이후 그들 부부는 양근 한감개(大甘浦, 현 경기도 양평군 강상면 대석리)에서 멀지 않은 마을에 터전을 잡고 신앙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남편이 1801년 이후 1828년까지 오랫동안 교회를 멀리하자, 막달레나는 끊임없이 남편의 회개를 위해 기도하여 마침내 남편이 다시 교회의 품으로 돌아오도록 하였다.

1839년 8월 손 막달레나는 남편 베드로와 두 아들과 함께 양근 관아에 체포되어 배교를 강요당하면서 혹독한 문초와 형벌을 받게 되었다. 이때 남편 베드로는 처음부터 끝까지 신앙을 굳게 증거하였지만, 막달레나는 잠시 마음이 약해지려고 하다가 이내 용기를 내어 신앙을 증거하였다. 그러자 군수는 부부가 보는 앞에서 두 아들을 죽이겠다고 위협하면서 그들에게 혹독한 형벌을 가하도록 하였다. 그럼에도 남편 베드로는 은총의 힘을 얻어 신앙을 굳게 다짐하면서 큰 소리로 다음과 같이 소리쳤다.

자녀를 사랑하는 것은 사람으로서 자연스러운 일이며, 우리 아이들의 괴로움은 내 자신의 괴로움보다 백배나 더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그들에 대한 사랑 때문에 천주님을 배반할 수 있겠습니까? 안 됩니다. 천만 번 못하겠습니다.”

 

얼마 뒤 군수는 사건의 전말을 감사(監司)에게 보고하였고, 감사는 다시 한 번 그들 부부를 시험해 보라고 지시하였다. 그 결과 막달레나 부부는 열 번 이상이나 문초와 형벌을 당해야만 하였다. 그러는 동안 그들의 두 아들은 배교하여 석방되었다.

아들들이 석방된 후 옥에 남은 막달레나와 베드로 부부는 관장의 지시로 일체의 음식을 제공받지 못해 극한의 굶주림에 시달려야만 하였다. 그럼에도 그들 부부는 문초와 형벌을 받을 때마다 배교를 거절하였고, 그러던 중 손 막달레나는 1839년 12월 22일(음력 11월 17일)에 55세의 나이로, 남편인 장사광 베드로는 이보다 나흘 전인 12월 18일(음력 11월 13일)에 52세의 나이로 각각 순교하였다.

 

 


출처: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약전

(2018. 4.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