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자료

양근, 여주, 단내, 죽산

수원: 47위

 

[양근]



▲ 양근 성지 내 순교자 신앙 고백비

 



▲ 양근 참수터. 하느님의 종 유한숙김일호가 순교한 곳이다


▲ 참수터를 바라보며(2019. 3. 22)

 

 

 



▲ 양근 관아 터. 양평역 후문에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 양근 관아 옥에서 순교한 하느님의 종들: 조상덕 토마스, 장사광 베드로와 손 막달레나 부부

  • 조상덕 토마스(1762~1801): 조동섬 유스티노의 아들. 양근 출생. 1800년 말 부친이 체포되었을 때 옥바라지를 했고, 1801년 신유박해로 다시 부친이 함경도 무산으로 유배되자 부친을 따라 무산까지 갔다. 이들 부자에게 앙심을 품고 있던 당시 양근 군수는 무산으로 포졸들을 보내어 조상덕 토마스를 체포해 끌고 오도록 했다. 조 토마스는 양근 관아에서 혹독한 형벌을 견디어 끝까지 항구했고, 1801년 음력 10월 초 39세의 나이로 옥사했다.

       체포될 때 조상덕 토마스는 부친에게 이렇게 말하며 그의 굳건한 신앙을 보여주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한 발 한 발 따라가는 것밖에 다른 생각이 없습니다."

  • 장사광 베드로(1787~1839)과 손 막달레나(1784~1839): 장사광 베드로는 권일신에게서 천주교 교리를 배웠고, 이후 양근에 자리를 잡고 신앙생활을 했다. 신유박해 이후에는 교회를 멀리하였으나 아내 손 막달레나의 기도와 권면으로 마침내 회두하였다. 1839년 장 베드로는 아내 손 막달레나와 두 아들과 함께 체포되어, 열 차례 이상의 문초와 형벌을 받고, 굶주림의 고통에 시달렸으나 끝까지 항구했다. 1839년 12월 18일 장 베드로는 52세로, 아내 손 막달레나는 12월 22일 55세의 나이로 옥사(아사)했다.

 



▲ 양근 관아 옥터(양근읍 관문1길9번길 끝자락) 폐가만이 남은 옥 터에서 여전히 꿋꿋한 생명력으로 자리를 지키는 나무들은 고귀한 피와 땀으로 신앙을 굳게 지킨 양근 순교자들의 희생을 온몸으로 기억하고 있을 것 같다. 

 

 

[여주]

 



▲ 여주 천주교 순교자 치명 기념비


▲ 여주 관아 남문 밖 형장 순교터(여주시 여흥로 비각거리)


▲ 여주 순교자 현양비(여주 성당 내)


▲ 여주 순교자 현양비 뒷면에 새겨진 하느님의 종들의 이름

* 여주의 순교자 하느님의 종 정종호와 임희영:

  • 정종호(1715?~1801): 복자 이중배 마르티노, 원경도 요한 등과 함께 체포되어 경기감영에서 형벌을 받은 뒤 사형을 선고 받았다. '고향으로 돌려보내 처형함으로써 그곳 백성들에게 경각심을 갖게 하라'(해읍정법)라는 판결을 받고 여주로 압송되어 1801년 4월 25일 참수형으로 순교했다. 당시 정종호의 나이는 50세 가량이었다.
  • 임희영(?~1801): 집안 모든 신구들이 천주 신앙을 받아들여 부모와 형제 모두가 입교하였으나 임희영만은 세례를 받지 않았다. 부친이 병이 들어 죽음을 앞두고 그에게 제사를 지내지 말도록 마지막 말을 남겼고, 부친이 세상을 떠나자 유언을 지켜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이에 여주 관장은 임희영과 함께 있는 천주교 신자들을 체포하였고, 이중배 마르티노와 원경도 요한이 갇힌 감옥에 함께 갇혔다. 이렇게 천주교인들과 함께 옥살이를 하면서, 그들의 권면을 통해 기도문을 배우는 등 천주 신앙을 받아들였다. (분명 감옥에서 세례를 받았을 것이나 그의 세례명은 전하지 않는다.) 정종호 등과 함께 1801년 4월 25일 참수형으로 순교했는데, 경기 감사가 조정에 올린 그의 사형 선고문에는 이러한 내용이 담겨 있다. "(임희영은) 천주 교리를 준수하고 신주를 세우지 않았으며,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단내 성지]

 



▲ 하느님의 종 정은 바오로 묘소(단내 성지)


▲ 하느님의 종 정은 바오로 묘소 앞에서(2019. 3. 22.)

 

[죽산]

 



▲ 죽산 옥 터(안성시 죽산초교길57-1 주변)

 

 



▲ 죽산 옥사 터 

* 죽산에서 순교한 하느님의 종 8위: 정덕구 야고보(옥사[교수형 추정]),  최제근 안드레아(옥중 교수), 방 데레사(옥중 교수). 여기중, 문 막달레나, 조치명 타대오, 김 우르시치나, 유 베드로 모두 옥중에서 교수형(교살)으로 순교한 것으로 추정된다.

 



▲ 죽산 순교자 현양탑(죽산 성지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