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조 치하 순교자 133위

133위 시복 대상자 약전

No.67 김 아우구스티노

67. 김 아우구스티노 (1805~1867)

 

김 아우구스티노는 청주 갈매골에 살던 양반으로, 젊어서 천주 교리를 배웠다. 그러나 그의 형이 천주교 입교를 막았으므로 가족들을 데리고 천주교 신자들이 사는 곳을 찾아 문경 한실 교우촌(현 경북 문경시 마성면 상내리)으로 이주하였다.

한실로 이주한 뒤 아우구스티노와 그의 가족은 함께 최양업(토마스) 신부에게 세례를 받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다. 그런 다음 아우구스티노는 한실 공소의 회장으로 임명되어 본분을 다하는 데 열중하였다. 이 무렵 그의 형 프란치스코도 천주교에 입교한 뒤 한실로 이주하였다.

1866년의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아우구스티노는 신자들을 보살피며 때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던 중 같은 해 3월(음력)에는 칼래(N. Calais, 강 니콜라오) 신부가 한실로 피신해 오자 잠시 머물기도 하였다.

김 아우구스티노 회장이 체포된 것은 1866년 11월 19일(음력 10월 13일)이었다. 이때 그의 아들 토마스와 종손자들인 아우구스티노⋅안토니오⋅베네딕토⋅빈첸시오 등 다섯 명도 함께 체포되어 문경 관아로 압송되었다가 상주 진영으로 이송되었다. 그리고 얼마 뒤에는 아우구스티노의 형 프란치스코와 그의 조카인 김 서방 등도 체포되어 상주 진영에서 아우구스티노의 가족과 함께 문초와 형벌을 받아야만 하였다.

영장은 아우구스티노의 집안을 가리켜 ‘너희 집안은 모두 천주교를 믿는 천주학쟁이들의 소굴이다.’라고 하면서 엄히 다스리도록 하였다. 이후 아우구스티노는 1867년 1월 23∼24일(1866년 12월 18∼19일)에 함께 투옥되어 있던 서태순(베드로), 서유형(바오로), 박 루치아, 장 서방 내외 등과 함께 다시 한 번 심한 매질을 당했으며, 그 와중에서 아우구스티노와 가족들, 함께 형벌을 받던 교우들이 모두 교수형으로 순교하였으니, 당시 아우구스티노의 나이 62세였다.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약전
 
 
  출처: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약전
  (2018. 4.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