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조 치하 순교자 133위

133위 시복 대상자 약전

No.69 박 루치아

69. 박 루치아 ( ? ~1867)

 

박 루치아의 출생지나 천주교 입교 과정은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혼인하기 전에 이미 가족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해오고 있었다. 그러다가 장성한 뒤 비신자인 서 씨와 혼인하여 경상도 점촌의 모전(茅田, 현 문경시 점촌동)에서 살았는데, 일찍 남편을 잃고 과부가 되었다.

혼인 초기에 루치아는 지붕 처마 밑에 교회 서적을 숨겨놓고 보았는데, 교회 서적을 보다가 집안 식구들에게 들키면 얼른 이불 밑에 감추곤 하였다. 그럴 때마다 식구들은 “그 책이 무엇이냐?”고 물었고, 루치아는 그럴듯한 말로 둘러대면서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녀는 식구들에게 “이 책은 천주교 서적인데, 친정에서 가져와 배우고 있다.”고 하면서 그 내용을 설명해 주었다. 이후 그녀의 집안 식구들은 모두 교리를 배워 천주교에 입교하게 되었다.

1866년의 병인박해가 한창이던 어느 날, 천주교 신자를 색출하러 다니던 포교들이 모전 부락으로 들이닥쳤다. 이때 루치아의 시동생인 서유형(바오로)과 그의 가족이 먼저 체포되었고, 이어 인근에 살던 박 루치아와 방 회장도 체포되었다.

루치아 일행은 이내 상주 진영으로 압송되어 문초와 형벌을 받아야만 하였다. 그러던 중 바오로의 아내 곧 루치아의 손아래 동서인 성 막달레나는 어린 자식들이 있다는 이유에서 자식들과 함께 석방되었고, 방 회장은 감옥을 탈출하였다. 그 결과 감옥에는 루치아와 시동생 바오로, 문경 한실(현 경북 문경시 마성면 상내리)에서 체포되어 온 김 아우구스티노와 서태순(베드로) 등만이 남게 되었다.

상주 진영에서는 감옥에 있는 신자들을 하나씩 처형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박 루치아도 1867년 1월 23∼24일(음력 1866년 12월 18∼19일)에 시동생 바오로를 비롯하여 김 아우구스티노, 서태순 베드로 등과 함께 다시 한 차례 매를 맞고 교수형으로 순교하였다.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약전
 
 
  출처: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약전
  (2018. 4.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