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위 시복 대상자 약전

No.22 유영근 요한 세례자

유영근(兪榮根) 요한 세례자 신부는 1907년 1월 20일 충청남도 아산의 공호(현 인주면 공세리)에서 유철준(바오로)과 정백동(루치아)의 3남 4녀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나 유아 세례를 받았고, 뒷날 당진 새터(현 신평면 매산리)로 이주하여 살았다. 영근은 아명이었고, 관명은 한주(漢柱)였다. 유영근 신부는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고, 신앙생활에 열심이던 부모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사제의 길에 뜻을 두었다.

열세 살 때인 1920년 9월 13일 서울 용산의 예수 성심 신학교에 입학한 그는 1932년 12월 17일 사제품을 받고, 이듬해 1월 황해도 장연 본당의 보좌로 임명되었다. 이어 유영근 신부는 수원 본당(현 북수동 본당)의 보좌를 거쳐 1936년 5월 춘천 본당(현 죽림동 본당)의 주임으로 임명되었고, 1938년 11월 이후 원주 본당(현 원동 본당)의 주임, 소신학교(곧 동성 신학교)의 교사, 장호원 본당(현 감곡 본당)의 주임, 충주 본당(현 교현동 본당)의 주임을 차례로 역임하였다. 그런 다음 1950년 1월 중순 서울대목구 경리 신부로 임명되었다.

춘천 본당에 재임할 당시에 유영근 요한 세례자 신부는 아주 규칙적인 생활과 철저한 일 처리로 교우들에게 모범을 보여 주었다고 한다. 소신학교 교사로 재직할 때에는 교회사 연구와 순교자 현양에 관심을 가지고 『수선 탁덕(首先鐸德) 김대건』을 집필하였으며, 1949년부터 최양업(토마스) 신부의 전기를 『경향잡지』에 연재하기 시작하였으나 전쟁 때문에 완성하지는 못하였다.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한 뒤에도 유영근 요한 세례자 신부는 피신하지 않고, 명동의 주교관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다가 6월 28일 새벽 북한군이 서울 시내에 진입할 당시에는 명동 성당을 찾아온 파리 외방 전교회의 셀레스탱 코요스(C. Coyos, 구인덕 첼레스티노) 신부를 만났다. 그리고 이튿날, 명동 주교관으로 거처를 옮긴 교황 사절 패트릭 번(P. J. Byrne, 방 파트리치오) 주교와 그의 비서 윌리엄 부드(W. R. Booth, 부 굴리엘모) 신부를 만나 함께 생활하였다. 이때 회현동에 거주하던 숙부와 숙모가 유영근 신부에게 와서 피신을 권유하였지만,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이를 거절하였다.

 

“제가 목자인데 양을 버리고 어떻게 먼저 피난을 갈 수 있습니까? 서울에서 양들이 피난을 다 한 다음에 피난을 갈 것입니다.”

 

7월 11일에는 북한군들이 명동 주교관으로 들이닥쳐 패트릭 번 주교와 윌리엄 부드 신부를 체포한 뒤 소공동의 삼화 빌딩에 수감하였다. 이때 유영근 요한 세례자 신부는 체포되지 않았으면서도 그들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으로 자진하여 그들을 따라갔다. 7월 17일, 유영근 신부는 세 차례나 명동을 오가면서 성직자와 수도자들을 위하여 음식물과 의류들을 가져올 기회를 얻었지만, 다른 곳으로 도망가지 않고 수감자들을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하였다.

7월 19일 북한군이 외국인들을 북송할 때도 유영근 요한 세례자 신부는 삼화 빌딩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얼마 안 되어 그도 북송 행렬에 포함되었으며, 그 뒤 중화(현 평양시 중화읍)와 군우리(현 평안남도 개천시 군우동), 영변(현 평안북도 영변군 영변읍)을 거쳐 강계(현 자강도 강계시)를 목적지로 고난의 행군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도중에 북한군들은 위연면의 온정(현 평안북도 운산군 운산읍)을 지나면서 유엔군의 추격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러자 그들은 마음이 다급해진 나머지 납북 인사들을 다그치며 백암산 줄기를 타기 시작하였다. 그 와중에 병이 중해진 유영근 요한 세례자 신부는 들것에 실려 가는 몸이 되었고, 결국 강계에 도착하지 못하고 평안북도(운산군 영웅리)와 자강도(송원군 월현리) 사이의 우현령(牛峴嶺)에 이르러 병사하고 말았다. 이때가 1950년 10월 하순에서 11월 초 사이로, 그의 나이는 43세였다. 선종하기 직전에 유영근 요한 세례자 신부는 고이 간직하고 있던 십자가를 꺼내 옆에 있던 목사에게 주었다고 한다.

 

 

하느님의 종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와 동료 80위 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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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느님의 종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와 동료 80위 약전
  (2022. 04.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