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위 시복 대상자 약전

No.35 베아트릭스

35. 베아트릭스 수녀(1874-1950)

 

베아트릭스 드 마리 오두아르(Béatrix de Marie Odouard) 수녀는 1874년 2월 3일 프랑스 루아르(Loire) 지방의 생소뵈르앙뤼(Saint-Sauveur-en-Rue)에서 조제프 오두아르(Joseph Odouard)와 마리 소피 페레(Marie Sophie Perret)의 딸로 태어났다. 고향 마을은 생테티엔느(Saint-Etienne)교구에 속해 있었고, 그녀의 어릴 적 이름은 안느 마리 죠세핀(Anne-Marie Joséphine)이었다.

1899년 1월 31일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에 입회한 베아트릭스 수녀는 1902년 8월 31일 첫 서원을 하였다. 착복식 직후인 1900년 4월 21일부터 1905년 말까지 베르농(Vernon) 병원에서 소임을 맡았다. 그런 다음 한국으로 선교 사명을 받고 1906년 1월 7일 마르세유에서 출발하여 2월 22일 서울에 도착하였다. 서울에서 환자들과 고아들을 돌보면서 사랑을 실천하던 그녀는 1909년 병에 전염되어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하였다.

1917년에 종신 서원을 한 베아트릭스 수녀는 1920년부터 4년 동안 대구 보육원에서 고아들을 돌보았다. 1924년에는 서울 수녀원의 수련장으로, 1932년에는 대구 수녀원의 원장으로 임명되었다. 그 무렵 한 수련 수녀가 이러한 편지를 남겼다. “베아트릭스 수녀님은 말보다는 행동으로 가르침을 주셨다. 그래서 그분이 대구의 원장으로 임명받았을 때 우리는 마음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팠다.”

대구 수녀원 재임기에 베아트릭스 수녀는 두 차례 한국을 떠난 적이 있었다. 1933년 초에는 중국 상하이에서 병을 치료하고 돌아왔고, 1938년에는 프랑스로 휴양 겸 휴가를 다녀왔다. 1943년 12월 초 그녀는 공석이 된 서울 수녀원에 원장 소임을 이어받았으며, 1948년 11월 16일에는 한국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가 관구로 승격됨과 동시에 그 초대 관구장으로 임명되었다.

관구장으로서 베아트릭스 수녀는 ‘공동체의 일치와 평화’를 중요한 운영 원칙으로 삼았고, 자신은 ‘자애와 슬기’로 맡은 소임을 성실히 수행하였다. “천품이 부드럽고 자애심이 유달랐으며,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진정한 사랑으로 병자를 보살핀, 국경을 초월한 어머니였다.” 그리고 “끊임없이 주님과 일치하는 애주애인의 생활을 하신 분”이었다.

1950년 6월 25일에 한국 전쟁이 발발하였다. 이때 베아트릭스 수녀는 해외로 피신할 기회가 있었지만, 총장 수녀에게 한국에 머무는 것을 허락받고는 “나의 임무는 이곳, 나의 한국의 딸들 곁에 있는 것입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런 다음 7월 17일 폴 비예모(Paul Villemot, 우 바오로) 지도 신부, 으제니(Eugénie du S. C. Demeusy) 수녀 등과 함께 북한군에게 체포되어 소공동의 삼화 빌딩에 수감되었다. 이곳에서 그녀는 사상 교육과 인민재판을 받았고, 7월 26일 여러 사람들과 함께 평양으로 이송되었다.

7월 29일 평양에 도착하여 수용소 생활을 하던 베아트릭스 수녀 일행은 9월 5일 평양 수용소를 떠나 11일 만포(현 자강도 만포시)에 도착하였다. 이어 고산진(현 만포시 고산리) 등지로 끌려다니는 고난의 여정을 겪고 나서 만포로 돌아왔다.

10월 31일부터는 만포에서 중강진(현 자강도 중강군 중강읍)에 이르는 이른바 ‘죽음의 행진’이 시작되었다. 이에 앞서 베아트릭스 수녀는 주머니 묵주와 한국 순교자들의 유해 등을 제외한 물품들을 으제니 수녀에게 맡겼다. 새로운 여정이 시작되자 그녀는 극도로 쇠약해졌다. 11월 3일에는 자신을 부축해 주던 으제니 수녀와도 강제로 이별해야만 하였다. 그리고 그날 북한군에게 피살되었으니, 당시 그의 나이는 76세였다.

그 전날 베아트릭스 수녀는 으제니 수녀에게 유언을 남겼다. “우리의 딸들에게 성 바오로 수녀들의 규칙을 잘 지키라고 말해 주세요.” 그러고 나서 “저의 주님, 제 영혼을 당신 손에 맡기나이다.” 하고 기도하였다.

 

 

하느님의 종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와 동료 80위 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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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느님의 종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와 동료 80위 약전
  (2022. 04. 27.)